아이디비밀번호








조나단의 영화 읽어주는 감독 (1061)
DRFA BEST 10 (18)
조나단 유 <내 인생의 영화 100선> (31)
Review 작성중 (396)
아티클 (12)
조나단 유 <요한계시록 강해> (12)
공지사항 (7)
번역작업중 (17)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3 회
휴거 그리고 제 7의 봉인
(요한계시록 5~6장)




2019/12/22 유감독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3 회
"휴거 그리고 제 7의 봉인"
(주의!  이 서머리를 읽기 전에 반드시 요한계시록  5~6장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5장 바로 가기(클릭!)
http://kcm.co.kr/bible/kor/Rev5.html




1.휴거의 논쟁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데살로니가전서 4:16~17-



성경에는 <휴거>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사도 바울은 자신의 저서 몇 번에 걸쳐

어느 날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지구상에서

한 날 한시에 동시에 사라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휴거를 둘러싼 논쟁은 하루 이틀의 것이 아니다.

그중에 가장 위중하고 심각한 논쟁은 이 휴거가 언제 일어나느냐는 시점에 있다.

안타깝게도 장로교와 감리교가 독식하고 있는 한국교회에서는

90%가 그리스도인들이 <7년 대환란>을 통과한 후에야 휴거가 일어난다고 가르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클라렌스 라킨 목사님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대환란을 통과한다는 가르침은 전혀 성경적이 아니라고 못박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장로교와 감리교, 안식일교, 몰몬교, 여호화 증인,성공회 등은

앞으로 PART9에서 서술하겠지만 요한이 계시록 1장에서 4장까지에서 서술한

실패한 교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 교회들의 모태는 어쨌든 로마 카톨릭이다.

대부분이 카톨릭의 이단적 행태에 반발하고 일어선 용감한 선조들을 그 태동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상당 부분 카톨릭에서 버리지 못하고 나온 몇 개의 교리들을 누룩처럼 품고 사는

숙명적인 교회들이다.

대표적인 예가 유태인들에게 주어졌던 <십계명>,<십일조>,<안식일>,<성전건축> 같은 절기와 율법의 용어들을

신약 교회 성도들에게 암묵적으로 그대로 적용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완성한 신약교회의 교리 어느 곳에도

우리 이방인들이 <십계명>과 <십일조>와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구절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은 각자 <헌금-그것도 기꺼이 기쁘게 내어야 한다>이나 <예배-힘써 모이기를 기뻐하라>나

<교회> 같은 용어로 바울은 간단하게 정리해 놓았다.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의 대표 교회로서 장로교와 감리교를 선택한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조나단 유 역시 강화도의 첫 관문, 섬 속의 섬, 동검도의 작은 감리교회를 출석하고 있다.

하지만 슬프게도 라킨 목사님은 현대 교회를 다니는 이들 중에서 과연 몇이나 휴거될 수 있을까에 관한

회의적인 결론도 말씀하고 계시지만 그것은 본강의에서 다루기로 하겠다.

지금부터 클라렌스 라킨 목사님이 말씀하신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결코 7년 대환란을 통과할 수 없다"라는

명쾌한 논지를 이 장을 통해 여러분에게 설명하고자 한다.,


휴거에는 흔히 하나님의 공의가 뒤따르는데

성경에 나오는 모든 멸망 뒤에는 항상 이 공의의 논쟁이 먼저 시작되었다.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하러 가는 천사에게 아브라함이 이 논쟁을 먼저 시작했다.


"의인을 악인과 같이 멸하는 것이 공의로울 수 있느냐?

당신이 소돔에서 의인 오십을 발견해도 멸망시키겠느냐?"


그때 천사는 흥미로운 대답을 한다.


"그곳에서 의인 오십을 발견하면 멸망시키지 않겠다"


그때 아브라함은 불안해 진다.

아무래도 그곳에 의인 오십이 없는 가 보다,

이번에는 아브라함이 또 묻는다.

"그럼 오십에 다섯을 뺀 사십 오인을 발견하면요?"

천사의 대답이 이어지고 아브라함의 이 질문은 계속된다.

결국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다섯명이 없어서 멸망의 카운트 다운으로 들어간다.

클라렌스 라킨 목사님은 <7년 대환란> 전의 휴거의 모델은 <소돔과 고모라>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대환란의 종말에는 커다란 전제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그 전제란 이 지구상에서 <성령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을 먼저 도피시켜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한국 교회의 90%는 라킨의 말을 결코 믿지 않는다.

교회 다니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대환란을 통과함으로서

정화될 필요가 있다고 가르친다.

이 말은 바꾸어 말하면 성도들에게 약간의 겁을 주어

자신의 삶을 늘 돌아보는 경각의 삶을 만들어 보겠다는 율법주의가 한몫한다.

하지만 이 가르침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계속 살펴보자.

창세기 19장에는 이 <휴거>에 관한 모형이 숨막히게 묘사된다.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롯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

주의 종이 주께 은혜를 입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에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보소서 저 성읍은 도망하기에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를 그 곳으로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읍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
  
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

네가 말하는 그 성읍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하였더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을 소알이라 불렀더라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여기서 주목해야 할 구절은 이것이다.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하나님은 <성령을 내재한 기독교인>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그  어떤 종말의 진행도 프로세싱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의 인과율>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롯을 의인이라고 말한다.

물론 성경도 롯을 의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롯은 아브라함이 네가 살 곳을 선택하라고 했을 때

눈을 들어 저 멀리 요르단의 도성들을 보고

압구정동이나 맨하탄처럼 화려한 소돔을 먼저 선택한 사람이다.

롯은 오늘 날 구원은 받고 교회는 다니지만

삶은 세상 사람들과 한치도 다름없는 전형적인 선데이 크리스찬의 모형이다.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베드로후서 2:8)"



소돔과 고모라는 당시 상상을 초월했다.

롯은 이 도성에 살면서 매일 매일이 지옥과 다름없었다.

그곳에서 펼쳐지는 인간 말종의 쾌락 앞에서 롯은 매일 매일 눈과 귀를 닫고 살아야 했다.

오죽하면 아버지와 함께 탈출을 성공한 롯의 두 딸은 바로 며칠이 지나지 않아

아버지와 근친상간을 실행한다.

두 딸에게는 아무런 죄의식이 없었다.

그냥 어렸을 때부터 그 도성에서 보고 배우고 자라온 것이

그런 성적 관념이었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목사들이 소돔과 고모라가 동성애 때문에 멸망했다고 하지만

소돔과 고모라는 단순히 동성애가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24시간 약에 취해 살았으며

그냥 눈에 보이는 대상은 우선 성적으로 취해야 하는 인간의 오감이 총체적으로 무너져내린

파국의 도시였다.

롯의 두 딸도 마찬가지였지만 하나님은 그런 롯의 두 딸도 멸망에서 건져내셨다.

이유는 단 하나,

아버지가 의인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이클 베이 감독의 '아마겟돈'이라는 영화에서

지구를 향해 돌진해 오는 행성의 가운데서 붉게 빛나는

용암의 결정을 보면서

'붉다'는 색감의 형용적 한계를 절감하게 된다.

그것은 단순히 붉은 것이 아니라

거대한 핏덩어리가 지구를 향해 달려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당시 소돔과 고모라에 쏟아졌던 운석들은

요한이 계시록에서 서술한 지구를 덮치던 피섞인 우박이었다.

운석의 피해에 대해서 2007년 부산대학에서 실제로 신입생들에게

면접시험의 '문제'로 제출한 적이 있다.

지름 1km짜리 운석이 지구에 떨어지면 어떤 영향이 주어지는지

암석권,생물권,수권,대기권을 연관지어서 시간순서대로

설명하라는 질문이 수험생들 앞에 던져졌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다.

일단 운석이 지표에 떨어지게 되면

암석권에서는 원소가 급격히 변하게 된다.

지름이 1km면 반경 5km이내의 암석은

대부분 압축되어 변성하게 되고

수권의 에너지는 복사와 파동으로 물은 급격히 가열되게 되고

수중 생태계는 회복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로 파멸된다.

가장 중요한 대기권의 충격인데 지표면에 떨어진다면

그 충격파와 충돌시의 폭발로 먼지들이 도성을 뒤덮는다.

이 먼지들은 성층권이 존재하는 제트기류를 타고

빠르게 지구에 들어오는 태양에너지를 막게 된다.

말 그대로 암흑이 소돔과 고모라를 덮게 되면서

한 마디로 그곳의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붉게 타들어가는

서로의 육체만 볼 수 있는 아비규환의 상태로 죽어간 것이다.

그런데 계시록에는 <7년 대환란> 기간 동안

소돔과 고모라를 덮쳤던 대 아비규환이 몇 차례에 걸쳐 지구에 있겠 될 것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이 7년의 기간을 대환란으로 표현하신 데는 분명 이유가 있는 것이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마가복음 13장 14절~)"



PART2에서 자세하게 설명했지만

"그 남자" 즉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의 성전에 앉는 순간

너희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가라고 예수님은 강력하게 못박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셨을 때는 <교회>는 존재하지 않았다.

청중들은 제자들과 유태인들이었다.,

앞으로 있을 대환란을 통과할 대상이 교회가 아니라 바로 유태인들임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 어느 구절에도 대부분 악에 맞서 싸우라고 했지

악으로부터 36계 줄행랑 치라고 권면하신 구절은 딱 이 한 구절밖에 없다.,

앞으로 이 지구를 덮칠 그 남자가 벌일 행위들은

창세 이후로 지금까지 없는 상상을 초월한 환란이 될 것임을 예수님 자신이 못박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대환란으로부터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대피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
하나님의 공의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가?


다시 바울이 말한 휴거의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2.휴거의 순서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 15:51~)




위의 성경 구절을 인용해서 휴거가 눈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일어난다고 가르치는

수많은 종말론자들이 있다.

이들의 가르침 역시 클라렌스 라킨 목사님은 성경적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휴거 자체는 순식간에 일어난다.

본 강의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휴거는

인간의 육신 전체를 1분 1초 흐르고 있는 피를 다 소진시키는 행위이다.

성경에는 <피>를 언급한 구절이 무려 7천번에 달할 정도로 <피의 책>이다.

바울은 휴거는 인간이 영원히 썩지 않는 다음 단계로 돌입하는 극적인 순간임을 서사하는데

이 과정에서 반드시 소멸되어야 하는 요소가 <피>다.

왜 <피>인지는 본 강의에서 클라렌스 라킨의 설명과 함께 진행될 것이다.

하지만 이 휴거의 순간 이전에 반드시 선행되는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미 세상을 떠난 그리스도인들의 무덤들이 갈라지는 사건이 선행된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데살로니가전서 4:13~)"



클라렌스 라킨 목사님은 휴거의 과정을 도표로 그려놓았다.



(그리스도인들이 셋째 하늘로 옮겨지는 대 이동에 관한 휴거의 과정은 본 강의에서 설명된다)



휴거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예수님의 <공중재림>이라고 한다,

즉, 예수님께서 둘 째 하늘, 우리가 흔히 말하는 코스모스 우주의 한 공간으로

수많은 영혼들을 데리고 다시 오시는 과정이다.

이들을 데리고 오는 목적은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우리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휴거 이전에

이미 세상을 떠나 현재 낙원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육체를 찾아 입혀주는 작업이 예수님에게는 우선인 것이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그 위대한 <부활>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부활의 모형을 예수님에게서 찾을 수 있다.

십자가에서의 운명 후 사흘 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에 갔을 때

예수님의 시신은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천사가 있어서 마리아게 말한다.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기독교는 부활의 신앙이다.

예수님은 한치의 오차도 없으시다.

자신이 육체를 찾아 이 지구에서 흔적을 지우시는 부활의 과정을 겪으셨듯이

이미 세상을 떠난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지구에서의 추억과 회환과 환희가 남아 있었던

육신을 찾아서 영혼과 다시 맞추어주는 작업을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구원받은 어머니와 아버지 육신을 화장을 해서

수목장을 하거나 바다에 뿌려버리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보며

조나단 유는 속으로 혀를 차면서 언제 철들래... 안타까워 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이 세상에는 조만간 전 세계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수많은 무덤이 갈라지는 대사건이 일어난다.

물론 이것은 지진과 거의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이것이 휴거인지 지진인지 거의 구분하지 못한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앞으로 있을 이 무덤이 갈라지는 사건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그래서 구원받은 이들에게 휴거는 도적같이 오지 못하는 것이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데살로니가전서 5장 4절)"



이렇게 갈라진 무덤 속에서 수많은 뼈와 가루들이 두번째 하늘 코스모스로 이동된다,

그것도 눈깜짝할 사이에...

그리고 그 다음 우리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휴거가 진행된다.

그 날 우주는 대 축제와 환호의 도가니이다.,

나는 지금 낙원에 있는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를 그 우주의 공간에서 껴안고

이 세상에서 한 번도 웃어보지 못한 대 환희를 경험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사도 바울이 가보았다는 세번째 하늘에

마침내 완성된(PART1,에서 설명한) 천국의 도성으로 입주할 것이다.


교회의 모든 지도자들이 항상 옳다고는 믿지 마라.

생각보다 성경을 많이 읽지도 않으며 생각보다 성경을 연구하는 이들도 많지 않다.

이제 직분은 직장이 되어버린 지도자들이 태반이며

그들도 자신들이 무엇을 가르치는지 모르는 맹인 지도자들이 많다.

성도가 환란을 통과할 것이라는 둥,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야지만 그나마 7년 대환란의 끝에서

들림을 받는다는 둥 하는 그들의 가르침에 현혹되지 마라.

자, 이제 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7년 대환란을 통과하지 않는지에 관한

거대한 해답이 열린다.

바로 <제 7의 봉인>이 그것이다.





3. 제 7의 봉인




(다니엘이 보았던 70주기에 관한 예언을 라킨이 도표로 그렸다, 이 속에는 휴거가 대충 언제 일어나는지에 관한 계산법도 들어 있는데 그것은 본 강의에서 다루기로 하겠다)




계시록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요한의 도전>이다.

성경을 해석하는 수많은 학자들은 계시록은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일방적으로 주어진 계시의 책이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딱 한 분만 계시록은 요한 스스로가 찾아나선

미래에 관한 해답의 여정이라고 해석한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이 바로 클라렌스 라킨이다.

나는 지난 30년 그토록 풀리지 않던 어떤 암흑의 순간이

라킨의 이 말씀을 듣는 순간

<팍>하는 정전기와 함께 어두웠던 모든 하늘이 밝아진 경험의 순간이 있다.

라킨의 이 해석은 어마 어마한 관념과 시점의 차이를 혁신시키는 해석이다.

자, 계시록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요한계시록 1장 9절~)"



위의 구절에서 우리는 한 가지 커다란 전제를 놓치고 있다.

요한이 도미티아누스에 의해 밧모 섬에 유대되어 계시록을 쓸 때 이미 나이가 94세에 육박했다.

구십의 노장이 자신이 계시록을 쓸 때의 직업을 밝히고 있다.

그는 자신을 "예수를 증언하는 자"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 말은 요한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자신이 품에 안겨 온몸으로 경험했던

그 예수님에 관해 가르치는 일이 직업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94세의 요한의 직업은 목사이자 성경 학교 선생님이셨다.

하지만 요한에게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다니엘서에 등장하는 의문의 책이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다니엘서 12장 4절)"



하나님은 천사 가브리엘을 보내어 다니엘에게

미래 지구에서 일어날 수많은 사건들을 보여주었지만

무슨 까닭인지 그 두루마기를 봉인해 버릴 것을 명령하셨다.

그 책의 해석은 <사람들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 해지는> 시대까지는

봉인되어 있어야 할 것을 명령하신 것이다.

사실 <요한 계시록>은 너무 일찍 씌어진 책이다.

원래 계시록이 씌여질 시점은 딱 2000년 정도가 적당한 시기이다.

사람들이 빨리 왕래하며 인공지능 데이터베이스를 기점으로 한

포털이 난무하는 시대에나 봉인이 풀릴 시점이라고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말했다.

하지만 요한은 그 금기에 도전해 보기로 한 것이다.

요한은 분명 그 날(토요일이 분명하다)도 밧모섬에서 간절히 묵상했을 것이다.

"대체 다니엘이 봉인해버린 그 책에는 무슨 내용이 담겨 있었을까?"

요한은 직감적으로 안 것이다.

평소 예수님의 띄엄 띄엄 하셨던 말씀!

"다니엘의 말한 바 <거룩한 성전에 멸망의 가증한 그 남자>가 오는 그 때"에

이 지구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요한은 그 궁금증으로 미칠 것만 같았다.

만약 내가 이 사실을 알아내고 책으로 남겨놓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많은 후대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줄 수 있을까?

요한은 미칠 것만 같았다.

그때 결국 예수님은 요한을 자신이 있는 셋째 하늘로 끌어 올리신다.

자, 위의 라킨의 논리가 왜 정확한지 다음 구절로 살펴보자.

이제 당신이 몰랐던 무시 무시한 사건이 계시록 제 5장에 등장한다.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요한계시록 5장)"


  

성경에는 하나님의 임존 앞에 직접 가까이 다가간 두 사람이 나오는데

바로 에스겔과 요한이다.

두 사람다 동일하게 하나님의 주변에는 4개의 미지의 생물체가 포진하고 있어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다리에 힘이 풀려 기절할 정도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제 요한이 하나님의 보좌 바로 앞에 서있다.

그런데 그곳에서 요한은 바로 문제의 그 봉인된 다니엘의 책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직접 손으로 들고 계신다.

책은 두루마리 형태로 말려 있지만

안과 밖으로 빼곡히 무언가가 적혀 있다.

문제는 그 책은 7개의 봉인으로 봉인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절대 이 책의 내용을 2천년전 요한이 살던 시대에는 발설할 수 없다는

하나님의 완강한 의지를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왜 그토록 이 책의 내용을 밝히기를 싫어하셨던 것일까?

그 이유는 이 강의의 마지막 PART10에서 밝혀보도록 하겠다.

600년 전 가브리엘로 하여금 봉인해 버리라고 명했던 다니엘이 기록한 그 책!

요한은 이 순간 심정이 타들어감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여러분은 상상이 가는가?

하나님이 계신 셋째 하늘에까지 가서도 목을 놓아 대성통곡하는 한 남자의 모습을!

그것이 바로 요한이다.

앞서 밝혔지만 요한은 즉흥적이고 예민하고 무엇보다 사랑을 예찬한 로맨티스트이다.

요한은 이곳에서조차 저 책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진 것이다.

저 책만 열린다면 나의 후세대 사람들에게

적어도 모르고 당하는 일은 없게 할 수 있을 텐데...

요한이 그렇게 목놓아 울고 있을 때 마침내 한 사람이 등장한다.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요한에게 장로 중 한 사람이... 다가온다.

나는 이 사람이 사도 바울이라고 믿는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가롯 유다 자리에 바울이 들어간 것이라고 믿는다)

바울이 요한의 귀에 대고 말한다.


"울지 마라,

저 책의 봉인을 뗄 분이 계신다"


그리고 마침내 그 분이 등장한다.

그 분은 어린 양의 코스튬을 하고 일곱 뿔과 일곱 눈의 가면을 쓰고 무대에 오르신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은 하나님 앞에서 지금부터 엄청난 뮤지컬을 시작한다.

여러분은 라킨이 뮤지컬이라고 한 말을 믿지 못하겠는가?

이어지는 구절들을 보라,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자, 예수님은 어린 양의 복장을 하고 하나님 앞에서 춤을 추신다.

동시에 예수님을 둘러 싼 수천 만명의 천사들이 코러스를 넣는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이어서 12명의 예수님의 제자들까지도 합세해서 후렴구를 반복한다.

예수님은 요한을 위해 아버지에게 호소하신 것이다.


"내가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지구에서 어떤 피흘리는 제사를 치루었는지 아버지는 기억하소서!"


그게 바로 예수님의 어린양 뮤지컬이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의 마음이 움직이신다.

결국은 예수님에게 7개의 봉인으로 봉인되었던 다니엘의 책을 열라고 명령하신다.

그리고 마침내 이 지구의 종말에 일어날 13개의 재앙을 담은 그 책의 봉인이 떼어진다.

사람들은 흔히 봉인이 풀렸다는 해석을

요한이 그 봉인된 책의 내용을 읽었다고 오인한다.

하지만 라킨 목사님은 <봉인이 풀렸다>는 말은

그 봉인 속의 내용들이 예수님의 무대를 둘러싼 360도 아이맥스 스크린 위로 실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 마디로 이제부터 요한은 자신을 둘러싼 무대가 360도 파노라마 스크린으로 변한 채

앞으로 이 지구에 펼쳐질 상황들을 5D 버추얼 상태에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요한은 지금부터 목격하게 될 상황들을 단 한 순간도 빠트리지 않고 기억해서

지구로 돌아와 글로 남기는데 그것이 바로 요한계시록이다.

거듭 말하지만 <요한 계시록>은 너무 일찍 씌어진 책이다.

원래는 라킨 목사님 같은 분에 의해 2000년도에 씌어질 책이었다.

하지만 요한이라는 한 사람의 집요한 인류애로 빨리 봉인이 풀린 책이다.

이제, 우리는 7개의 봉인으로 봉인되었던 다니엘의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나 볼 것이다.

그 여정은 차마 이 세상에 남아 있으면 결코 안될

비극과 절망과 지옥의 긴 여정이 될 것이다.

그것을 공부하고 나면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대환란을 통과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눈처럼 사라질 것이다.







기간/2020년 4월 4일 매주 토요일 오후 6시~ 10주간(중간에 불참하실 분 절대 신청하지 말 것!)

장소/DRFA 동검도 365예술극장

신청/카카오 아이디 drfacokr로 문의 또는 아래 링크를 클릭 후 회원가입 후 댓글란에 계시록 강의를 듣어야히는 이유를 적고 수강신청을 해주세요.

자격/반드시 요한계시록을 10번 이상 읽으신 분!,그리고 강의 서머리를 최소한 2번 이상 정독하신 분!


바로가기 링크(클릭)
http://www.drfa.co.kr/bbs/zboard.php?id=thereader&page=1&sn1=&divpage=1&category=6&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113


[DRFA,JONATHAN]







LIST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서문,a prolog(ue)

"조나단 유가 클라렌스 라킨을 만났을 때"
+6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1 회
천국 혹은 새 예루살렘성(城)
(요한계시록 21~22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2 회
적 그리스도
(요한계시록 13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3 회
휴거 그리고 제 7의 봉인
(요한계시록 5~6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4 회
"13개의 대재앙"
(요한계시록 6~16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5 회
"14만 4천명의 의인"
(요한계시록 7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6 회
"다시 온 모세와 엘리야"
(요한계시록 11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7 회
"아, 바벨론!"
(요한계시록 17~18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8 회
"재림, 그리고 아마겟돈 전쟁"
(요한계시록 19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9 회
"교회의 실패"
(요한계시록 1~3장)
+1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10 회(완결)
"하나님은 선한 분이신가?"
(요한계시록 4장)
+1
[부록]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다니엘의 70주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Daniel's 70 WEEKS
+1
1 [2][3][4][5][6][7][8][9][10][11][12][13][14][15][16][17][18][19][20]..[78]
copyright 2003-2020 JONATHAN YU FILMS / skin by drf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