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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5 회
"14만 4천명의 의인"
(요한계시록 7장)




2019/12/22 유감독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5 회
"14만 4천명의 의인"
(요한계시록 7장)
(주의!  이 서머리를 읽기 전에 반드시 요한계시록 7장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7장 바로가기(클릭)
http://kcm.co.kr/bible/kor/Rev7.html





1.조나단 유는 라킨의 광신도인가?



연재가 이쯤되니 어김없이 여기 저기에서 쏟아져나오는 힐란 아닌 힐란...

예측했지만 어김없이 사람들은 나더러 클라렌스 라킨의 광신도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나는 평소에 여호와 증인 분들을 만나면 꼭 간곡히 하는 말이 있다.


"단 한 번만이라도 러셀의 교리에 오류가 있다는 의혹을 품어보라!"


이 질문은 내게도 동일하다.


"조나단 유, 단 한번만이라도 라킨이 틀렸다는 의혹을 품어보라"


물론, 나 역시 라킨의 어떤 해석에는 여전히 의문을 갖고 있다.

예를 들자면 적 그리스도가 가롯 유다의 문자 그대로의 21세기 부활이라는

라킨의 해석 따위이다.,

이것은 내가 라킨과 나 사이에 풀어야 할 간극이기도 하다.

걱정 마시라,

나는 세상에서 맹신을 가장 혐오한다.

나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아집이 만들어낸

추한 인간의 노후의 모습을 나는 수도없이 봐왔기 때문에

언제든지 라킨보다 더 위대한 해석을 내어놓는 학자가 나타나면

기꺼이 그의 가르침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라킨 만큼 위대하게 성경을 해석해낸 신학자는 결코 만나보지 못했다.


오늘 마침내 탈도 많고 말도 많은 14만 4천명의 의인에 대해서 공부할 차례가 되었다,.

아마도 오늘 이 장에서 수많은 청중들이 떨어져 나갈 것이다.

뭐, 어쩔 수가 없다.

라킨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나온 나의 해석이 틀렸다면 그것은

내가 주님으로부터 맞아야 할 커다란 회초리의 문제이니

여러분은 그저 이런 해석도 있구나 정도에서 끝내주었으면 좋겠다.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유다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요한계시록7장1~)"




조나단 유는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 누누히 말했지만

요한계시록은 할 수 있다면 최대한 문자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하는 책이다.

요한은 제 7의 봉인이 열리기 바로 직전에 아주 이상한 무리들을 보게 되는데

바로 14만 4천명의 남자들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천사들에게 7의 봉인이 열리기 전에 빨리 이 14만 4천의 이마에

도장을 찍기를 명령하신다.

이 도장의 문양은 계시록 14장에 나온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 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요한계시록 14장1절)"




14만 4천명의 이마에는 '여호와,Yaweh'와 '그리스도,Χριστός'를 상징하는 어떤 문양이 찍힐 것이다.

그 문양의 디자인은 하나님께서 직접 하셨으며

이 인장은 앞으로 지구에 들이닥칠 13개의 재앙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일종의 강력한 방어진이 된다.

이 14만 4천명을 가장 먼저 자신들의 교리에 끌어들인 두 사람은 러더포드와 러셀이다.

이 두 사람은 14만 4천명에게 <파수대>라는 이름을 붙여

영원히 죽지 않고 대환란의 끝까지 통과하는 사람들이라고 자신들의 형제 자매들을 속였다.

그리고 이 파수대에 들기 위해서는 죽도록 전도하라고 명령했다.

그들이 사용한 교리는 카톨릭이 그러하듯 마태복음에서 시작된 4복음서이다.

평화를 사랑한다는 명분으로 병역을 거부하고,

피를 멀리하라는 구절을 이용해 수혈을 거부하게 해서

수많은 영혼들을 그냥 죽게 했다.

조나단 유는 이 글의 말미에 오늘 날 한국교회들이 따르는 4복음서의 교리들이

왜 현재 교회를 다니는 그리스도인들의 것이 아닌지를 상세하게 설명할 것이다.


여러분은 너무나 흥미롭지 않은가?

러셀과 러더포드의 이 교리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L교주에 의해

거대한 S 종교집단을 만드는 데 그대로 적용되었다,

이 14만 4천을 이용한 종교 집단은 러셀 이후 속속 등장한다.

'제 칠 일 안식교회'도 14만 4천이 자신들이라고 주장했고

몰몬교, 캠벨파, 심지어 워치만 니 계열의 지방교회 역시도 이 14만 4천을 구분된 자신들이라고 가르친다.

여러분들은 정말 재미 있지 않은가?

요한은 7장에 분명히 14만 4천명의 족보에 대해서 또렷하게 기록해 놓았다.

유다 지파에서 1만 2천명을 차출하고

르우벤 지파에서 1만 2천명...

그리고 마지막 베냐민 지파에서 1만 2천명을 차출해서

예수님은 야곱의 12지파에서 모두 14만 4천명을 차출한다.

(단 지파가 빠지는 것은 단 지파는 오늘날의 로마 캐톨릭의 모체가 된다

그것은 본 강의에서 다루겠다)


이들의 임무는 예수님이 시키는 그 어떤 일이라도 완수해내는 것이라고 계시록은 기록한다.

여러분은 무한한 의문이 들지 않는가?

만약 교회의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휴거되지 않고 여전히 7년 대환란 기간 동안 살아 있다면

왜 예수님은 교회를 사용하지 않고 갑자기

유태인들 중에서 14만 4천명을 차출하신 것일까?

이 14만 4천명의 임무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들은 7장 이후 종적을 감추고 다시 14장에서 잠시 등장한다,

그런데 이들이 있는 곳이 이상하다.

지구가 아닌 것이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 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요한계시록 14장 1절)"





7장에서 차출된 14만 4천명의 유태인들이 8장부터는 사라졌다가

갑자기 14장에 나타난다.

8장부터 14장까지는 이 지구에 6개의 재앙이 융단폭격으로 쏟아지던 때이다.

이 14만 4천명은 결코 죽지 않는 표식을 이마에 달고

이 재앙의 기간 동안 무슨 임무를 수행했던 것일까?


이 구절은 휴거가 1번만 일어난다고 하는 주장하는 종말론자들의 주장이

틀렸음을 이야기 해주는 구절이기도 하다.

왜냐면 이들이 목격된 곳이 어린 양의 시온산이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7년 대환란 동안 예수님은 단 한 번도 이 지구에 내려오시지 않는다.

가장 가까이 오신 정도가 그리스도인들을 휴거 시키기 위해 대기권 밖에까지만 접근하신다.

그래서 14장의 이 시온산은 셋째 하늘로 해석해야 한다.

이 시온산이 어디인지는 히브리서가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시온 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무수한 천사들과(히브리서 12장 22절)"



이 시온산은 앞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떠나 입주할  천국의 도성 안에 있는 산이다.

예루살렘을 여행해본 사람들은 그 독특한 형성에 놀라워한다.

마치 도시 전체가 골뱅이처럼 꼬불 꼬불 이어져서

도시 가장 맨 꼭대기에 알 아크 사원,

즉 다윗의 성전이 있다.

현재 예루살렘은 앞으로 우리가 갈 천국의 모형이다.

그래서 라킨은 계시록의 천국의 모양을 피라미드 형태로 그린 것이다,

그 천국의 시온산에 이 14만 4천명이 갑자기 예수님과 함께 서 있는 것이다.

라킨 목사님은 14만 4천명이 동시에 셋째 하늘로 올라 갔다는 것은

휴거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

이들은 7년 대환란의 중간 지점, 3년 반이 되는 시점에서 갑자기 지상에서 사라져 천국으로 옮겨진 것이다.

대체 이들은 지난 3년 반동안 지구에서 무슨 일을 하다가 갑자기 천국으로 휴거된 것일까?

그들의 임무는 무엇이었을까?

이어지는 계시록의 14장 3절에 그 해답이 있다.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짐승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 같은 것을 불렀는데

땅에서 구속을 받은 십사만 사천 명 외에는 그 노래를 배울 사람이 없더라(계시록 14장3절"




이들이 휴거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입을 다물게 만드는 구절이다.

14만 4천명이 네 짐승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

여기 네 짐승은 요한과 에스겔이 동시에 목격했던 하나님의 보좌를 포진한 미지의 생물체이다.

14만 4천명이 하나님 앞에서 희한한 노래를 부르는데

그것은 그들 만이 아는 노래이다.

하나님은 찬양을 너무도 좋아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든 목적 자체가 24시간 자신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하나님은 그 노래를 들으며 우주의 근심을 내려놓기 위해서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찬양 앞에서 마음이 녹아내리는 분이시다.

아합과 가지 말라는 여정을 떠난 여호사밧이 사막에서 갑자기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도

엘리야의 수금과 찬양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여러분은 지금 인생 최대의 고난을 통과하고 있는가?

찬양하라,

찬송가를 부르면서 그 위기의 골짜기를 벗어나라.

계속해서 이들이 지난 3년 반 동안 지구에서 한 임무가 기록되고 있다.



"이들은 여자들과 더불어 더럽혀지지 아니한 자들이니

이는 그들이 동정들임이라

이들은 어린 양이 어디로 가든지 따라가는 자들로 하나님과 어린 양께 첫열매들이 되어

사람들 가운데서 구속을 받았느니라(요한계시록 14장 4절)"




역사속에서 수많은 성경해석가들이 14만 4천명이 실존하는 인물들이 아니라고 반박해온 구절이다.

인간이, 그것도 남자가 어떻게 14만 4천명이나 숫총각이 있을 수 있느냐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후손들 중에서 메시야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관념으로

성적으로 무한 개방적인 유태인들 중에 숫총각이라니?

말도 안된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성경은 이 14만 4천명으로 차출되는 첫번째 조건이

동정, 즉 숫총각이어야 한다고 기록한다.

라킨은 오랫동안 이 14만 4천에 대해서 추적했다.

그리고 라킨은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영어를 쓰는 종족인 앵글로 색슨족이

잃어버린 열 지파의 후손들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열 지파의 후손이 나온다는 것을 믿지 않는 이유는

민수기 23장의 말씀 때문이다.


"이 백성이 홀로 거할 것이요,

민족들 가운데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 아니 하리라(민수기 23장9절)"


요세푸스는 AD70년 경에 갈대아 우르에서 나온 사람들이 유프라테스 강 건너편에 살고 있었다고 쓰고 있다.

제롬도 5세기 경 <호세아 주석>에서 똑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잃어버린 이스라엘의 열 지파는 페르시아의 오루미아 호수 옆,

투디스탄 산맥의 정착지 등에서 지금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라킨의 이 추적은 엘리아 카잔의 영화 <아메리카 아메리카>를 보면 그대로 증명이 된다.

<워터 프론트>와 <에덴의 동쪽>을 만든 명장, 엘리아 카잔은 자신의 아버지 세대들이 어떻게

미국으로 이주해 왔는지를 3시간짜리 대하극으로 만들었다.

그 영화에서 카잔의 선조들은 터키와 아시아의 고원지대에 있는

아나톨리아 산맥에서 율법을 지키며 살아가던 경건한 자들이었다.

이들은 여전히 화목제와 첫열매, 십일조 등을 바치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모세의 율법을 실행하며 숨막히게

후세대의 삶을 옥죄이며 살아간다.

이런 율법의 세상으로부터 탈출하는 카잔의 할아버지 이야기가 숨막히게 그려진다.


라킨은 반드시 환란의 때에 이 14만 4천이 등장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동시에 이들은 어린 양이 어디로 가든지 따라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에게 절대 충성이 이들의 임무였다고 말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신기하지 않는가?

현재 유태인들은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했다는 어린 양으로 인정하지 않는 민족이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을 구속해줄 그 어떤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이들에게서 차출된 이 14만 4천명은

아무런 저항 없이 무슨 까닭인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흥미로운 사실은 계시록에는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무리로는 이 14만 4천명과

다시 오는 두 증인 모세와 엘리야밖에 없다.

무슨 까닭인지 계시록에는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교회의 성도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한국의 어느 어느 교회에서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친

그 어떤 위대한 성도가 나온다는 구절이 단 한 번도 없다.

무슨 까닭인지 계시록에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어느 한 날 한시에 모조리 그림자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재앙과 비탄만 가득한 이 땅에 이 14만 4천의 숫총각 전도사들 만이 이마에 인을 치고

종횡무진 활약을 한다.

그러다 그들은 갑자기 3년 반의 시점에 천국으로 휴거되어 버린다.

본 강의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계시록의 중간 지점에는 큰 사건이 하나 일어난다.

세상을 하나로 통합한 대통령, 즉 적 그리스도가 죽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요한계시록 13장3절~)"




여러분은 두렵지 않는가?

그토록 열광하던 하나로 통합된 세계의 대통령이 어느 날 죽는다.

하지만 이 남자가 죽던 날 하늘에서 미카엘과의 싸움에서 패하고 쫒겨난 용이

이 남자의 몸으로 들어간다.

그때부터 성경에는 이상한 묘사가 등장한다.



"(사람들이)용과 짐승에게 경배하며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이제 부활한 절대 악, 적그리스도는 아무도 이길 수 없는 불멸의 존재가 된 것이다.

부활한 적그리스는 이스라엘에게 돌려주었던

예루살렘의 성전을 빼앗아 자신의 보좌로 삼는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마태복음 24장 16절)"



그리고 부활한 적그리스도는 전 인류가 먹고 사는 생계가 달린

스마트 워치의 상용 물건 매매 어플의 첫 페이지에 이런 문구를 넣는다.


"당신이 이 어플을 실행한다는 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에게 경배한다는 뜻을 의미합니다"


이제 사람들은 이 어플의 약관에 동의하지 않고서는 결코 물건을 사거나 팔지 못한다.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요한계시록 13장 18절"



하지만 기억하라,

이 어플에 동의하는 순간 이제 그들에게는

천년왕국으로 가는 마지막 기회까지도 상실되어 버린다.

아무도 풀지 못했던 수수께끼,

라킨 목사님은 이 14만 4천명의 임무가 바로 이 복음과 관계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지난 3년 반 동안 지구인들에게



"지금 온 세상이 경배하는 저 대통령은 어느 날

적그리스도가 됩니다.

그리고 어느 날 여러분들의 스마트 워치에 자신을 경배하는 문구를 띄울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일이 있이도 그 문구에 동의하면 안되며

부디 그 환란을 통과하시기 바랍니다.

그 길 만이 이제 마지막 남은 단 하나의 구원,

바로 회복될 천년왕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 천년왕국에서는 지금까지의 지옥은 사라지고

새로운 에덴이 회복됩니다.

사람들의 나이는 평균 700세가 되며

어린 아이가 사자의 굴에 손을 넣어도 사자가 물지 않을 것입니다"


자, 7년 대환란 기간의 구원의 복음이 달라져 버렸다.






2.구원의 복음은 매 시대 마다 다르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디도서 3장 5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교회시대의 구원은 행위가 아니다.

우리가 아무리 의로운 행위를 해본들 그것은 구원과 관계 없다.

오로지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예수님의 긍휼하심을 따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구원 받는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는 이런 은혜의 복음에 관한 구절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다시 행위가 등장한 것이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요한계시록 13장 8절~)"




자, 이 구절을 보라!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의 대속 복음으로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고

(7년 대환란이 진행되는) 이 땅에 남은 자들...은 바로

위의 14만 4천에게 전도된 환란 성도들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90%가 믿음의 정절을 지키지 못하고

결국 그 짐승에게 경배하게 되어 있다고 요한은 말한다.

남은 10%의 환란 성도들은

<적그리스도의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는 것>으로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을 얻게 될 것이라고

요한은 기록하고 있다.

라킨이 이런 해석을 내어놓아도 한국 교회의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여전히 현재의 그리스도인들이 7년 대환란을 통과해야 한다고 꾸역 꾸역 가르친다.


조나단 유가 거듭 말하지만 한국을 형성하고 있는 교회들은

대부분 캐톨릭에서 갈라져 나왔다.

여러분들은 캐톨릭이 성경에서 가장 사랑하는 대목이 어디인줄 아는가?

바로 마태복음 22장에서 25장까지이다.

거기에는 혼인잔치에 참석하지 못하는 다양한 신부의 모습이 등장한다.

등잔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해서...

또는 잔치에 참석하라고 보낸 주인의 아들을 때려 죽였기 때문에,

주인의 출장 중 달란트를 파묻어 놓아 화를 당하는 종의 비유들...

혼인잔치에 참석하지 못한 예수님의 비유들을 통해

지난 수세기 동안 캐톨릭은 행위를 통한 구원을 가르쳐 왔다.

그리고 그 가르침은 캐톨릭에서 탈출하면서 캘빈이나 웨슬레,

러셀과 러드포드, 몰몬교, 제 7 안식일 교회 모두가 그 교리를 품은 채 갖고 나왔다.

여기에는 J목사가 창출해낸 오순절 교회도 걸려 들었다.

이제 한국 교회에 마태복음을 구원과 접목시켜 가르치는 목사들로 차고 넘친다.

하지만 아래 도표에서 보듯이 라킨 목사님은

마태복음을 지금 교회시대에 적용 시키는 것이 모든 현대 교회의 비극의 시작이라고 말씀하신다.

라킨 목사님은 바로 이 비극을 깨우치기 위해 도표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아래 도표를 보라.





(라킨은 각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는 복음은 다르다고 구분하고 있다)



숫자 1이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셨을 때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가르친 천국 복음들이다.

그 유명한 산상수훈으로부터 수많은 주옥 같은 설교들이 예수님의 입에서 터져나온다.

중요한 것은 이 때의 예수님의 복음들은 단서가 붙는다.

이 때의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복음들은

예수님께서 유태인들에게 사형당하지 않고

나귀를 타고 무사히 예루살렘의 성전에 입성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정부를 수립했을 때의 일종의 헌법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실패했고 십자가에서 사형 당하셨다.


예수님의 정부 수립이 실패하고 사탄이 쾌재를 부르고 있을 때

하나님은 마침내 그의 숨겨 놓았던 비밀 프로젝트를 가동시킨다.

그것이 바로 교회이다.

위의 도표 2에 해당하는 구간이다.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에베소서 3장 9절)"



교회가 하나님의 비밀이었다는 것은 바울의 서신 여기 저기에서 등장한다.

교회는 루시퍼조차도 상상도 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비밀 병기이다.

이 교회 시대의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방법은 딱 한 가지 뿐이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에베소서 2장 9절)"




십일조를 얼마 했느냐, 건축 헌금을 얼마나 내었느냐,

새벽 기도를 얼마나 다녔느냐, 전도를 얼마나 했느냐

따위가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교회 시대의 구원은 오로지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진다.

하지만 카톨릭에서 갈라져 나온 한국교회의 대부분이 사도 바울의 복음을 뒤로 제쳐두고

자신들과 하등 관계 없는 4복음서의 예수님의 복음을 사람들에게 가르친다.

바로 은연중에 행위를 가르치는 것이다.

정말 이상하지 않는가?

마태복음의 혼인잔치 설교가 사도 바울의 로마서에서부터는 완벽하게 자취를 감추었다가

난데없이 요한계시록에서 다시 등장한다.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요한계시록19장 9절)"




성경에 너무 모순이 많지 않는가?

분명히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고 해놓고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죄사함을 믿기만 하면

그 믿음으로 100% 천국으로 직행한다고 가르쳐 놓고

갑자기 요한계시록에서는 다시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과 받지 못한 자들이 등장한다.

교회시대의 성도들이 다 사라지자

중단되었던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구원 교리가 다시 계시록에서 이어지는 것이다.


PART9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로마 카톨릭은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무시 무시한 영적인 세력이다.

콘스탄티누트에 의해 만들어진 로마 카톨릭의 역사는

고작해야 A.D.325년 니케아 종교회의가  그 시작이다.

하지만 그 앞서 있던 300년 동안의 사도 바울이 피땀 흘려 공들였던 초대교회들을

로마 카톨릭은 단 1백년도 안되어 완벽하게

변질시켜 버린다.

그때도 카톨릭이 이용했던 것은 돈이다.

PART9에서 이때 카톨릭이 초대교회들을 변질 시키기 위해

초대 교회 목사들에게 뿌렸던 돈의 양에 대해 증거를 들어 설명하겠다.

하지만  이제 요한 계시록에는 그 로마 카톨릭의 완벽한 종말이 기록되어 있다.


조나단 유를 오해하지 마라.

카톨릭에 구원이 없다는 복음주의자들의 말도 틀렸다.

오늘 날 대형교회의 목사나 집사 보다도 훨씬 더 경건한 이들이 카톨릭에 수두룩 하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하루 하루를 뜨겁게 사는 수녀님과 신부님들도 수두룩하다.

나는 이들을 존경하며 조나단 유의 연서는

카톨릭에 몸담고 있는 사랑하는 나의 지인들에게도 해당된다.

나는 그들을 그곳에서 꺼집어내어 휴거의 우주선에 태워야 한다.




(7년 대환란 동안의 복음은 숫자 3에 해당되며 그것은 분명 행위와 연관된다)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7년 대환란 동안의 복음은 무엇일까?

바로 위의 라킨의 도표 중 숫자 3에 해당되는 복음이다.

이 때 복음의 주요 골자는 바로 적그리스도의 정체를 세상에 알리고

이제 은혜 시대는 물건너 갔으니 오로지 방법은 단 하나!

여러분은 천년왕국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 방법은 적그리스도에게 경배하지 않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으로 복음이 변하는 것이다.

14만 4천명의 임무는 적그리스도의 정체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임무였을 것이라고 라킨은 추측한다.


그런데 왜 이들은 7년 대환란의 중간에 이 임무를 중단하고 갑자기 하늘로 들림을 받았을까?

라킨은 추측하건대 이들이 적그리스도의 암살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요한계시록 13장3절~)"




예수님께서 급히 이들을 하늘로 피신시킨데는 암살당한  적그리스도가

살아나면 가장 먼저 자신을 죽인 이들을 찾아내어 몰살할 것이기 때문이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마가복음 13장 14절~)"




예수님은 종말의 시기를 묻는 제자들에게 생뚱맞게 한 남자에 대해 말씀하셨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성전)에 선 것을 보거든

무조건 도망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요한은 말한다.


"(사람들이)용과 짐승에게 경배하며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이제 부활해 성전에 앉은 남자는

자신에게 경배하지 않는 이들에게 의식주를 완벽하게 차단해 버린다.

그리고 헌법을 개정해서 이를 어기고 불법으로 식량을 거래하는 이들을 찾아내어

죽이는데 그냥 죽이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 경배하지 않은 이들은 배가 너무 고프다.

죽을 것만 같아서 비밀 시장에서 식량을 거래한 자들을

적그리스도는 단 한 명까지라도 찾아내어 공개 처형을 시킨다.

이때 단두대가 다시 부활한다.

이 단두대에 이 지구에 다시 온 엘리야와 모세 까지도 참수당한다고 계시록에는 적혀 있다.



"그들(두 증인)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요한계시록11장 7절)"



이 남자는 가공할 남자이다.

부활한 모세도, 엘리야도 죽여버린다.

아무도 당하지 못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14만 4천명을 재빨리 도피시킨 것이다.

자, 결국 휴거는 단 한 번만 일어난다는 종말론자의 해석도 틀린 것이 되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랑하는 여러분,

조나단 유가 이렇게 열변을 토해도

당신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지 않겠는가?

내가 만약 육신이 병들어 죽지 않는다면

나는 어느 날 육신을 가진 채 둘 째 하늘로 올라갈 것이다.

그곳에는 셋째 하늘로 이동하는 거대한 노아의 방주를 모델로 한

거대한 휴거의 우주선이 있을 것이다.

그 우주선 안에는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방주에 여러분들을 같이 데리고 가야 한다.

당신은 이래도 7년대환란을 통과해야 한다는

교회의 지도자들의 말을 들을 것인가?

부디 나와 여러분 사이에 진실의 문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속히 열어주시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기간/2020년 4월 4일 매주 토요일 오후 6시~ 10주간(중간에 불참하실 분 절대 신청하지 말 것!)

장소/DRFA 동검도 365예술극장

신청/카카오 아이디 drfacokr로 문의 또는 아래 링크를 클릭 후 회원가입 후 댓글란에 계시록 강의를 듣어야히는 이유를 적고 수강신청을 해주세요.

자격/반드시 요한계시록을 10번 이상 읽으신 분!,그리고 강의 서머리를 최소한 2번 이상 정독하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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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FA,JONATHAN]


























LIST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서문,a prolog(ue)

"조나단 유가 클라렌스 라킨을 만났을 때"
+6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1 회
천국 혹은 새 예루살렘성(城)
(요한계시록 21~22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2 회
적 그리스도
(요한계시록 13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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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회
휴거 그리고 제 7의 봉인
(요한계시록 5~6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4 회
"13개의 대재앙"
(요한계시록 6~16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5 회
"14만 4천명의 의인"
(요한계시록 7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6 회
"다시 온 모세와 엘리야"
(요한계시록 11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7 회
"아, 바벨론!"
(요한계시록 17~18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8 회
"재림, 그리고 아마겟돈 전쟁"
(요한계시록 19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9 회
"교회의 실패"
(요한계시록 1~3장)
+1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10 회(완결)
"하나님은 선한 분이신가?"
(요한계시록 4장)
+1
[부록]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다니엘의 70주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Daniel's 70 WEEK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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