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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6 회
"다시 온 모세와 엘리야"
(요한계시록 11장)




2019/12/22 유감독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6 회
"다시 온 모세와 엘리야"
(요한계시록 11장)
(주의!  이 서머리를 읽기 전에 반드시 요한계시록 11장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11장 바로가기(클릭)
http://kcm.co.kr/bible/kor/Rev11.html





1.각 시대 마다 다른 구원의 법칙!





(라킨은 구원의 복음은 각기 다른 룰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경영방식, 즉 경륜이라고 한다)



우리는 앞의 장에서 앞으로 지구에 닥칠 7년 대환란 때의 구원의 복음은

마태복음에서 요한복음에 등장한 예수님의 교리들이 다시 부활한 것이라고 배웠다.

동시에 현재, 21세를 살아가고 있는 교회 시대에는

4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복음을 적용되지도 않을 뿐더러

적용해서는 안된다고도 배웠다.

라킨의 이 해석에 역사 속 수많은 교단들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라킨을 극단적 세대주의자로 낙인 찍어버렸다.

하지만 초등학생 정도의 지능만 있어도 라킨의 이 해석이 정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직접 서술한 한 대목에서 알 수 있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태복음 5장 29절~)




그 유명한 산상수훈에 등장하는 구원에 관한 법령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나귀를 타고 들어가 보좌에 앉을 다윗의 성전에서

앞으로 세상을 통치할 왕국의 헌법 중 한 조항을 설명하시는 것이다.

그 왕국에서는 더 이상 모세의 율법이 우선하지 않는다.

모세의 율법보다 더 강력한 예수님의 신법이 통치 기반이 되신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태복음 22장 36절~)"




예수님이 통치하는 새 왕정시대에서 가장 으뜸의 법칙은

<이웃사랑>이 된다.

그곳에서는 <선한 일> 즉, 이웃을 향해 내가 행한 <의>가 가장 으뜸이 되는 곳이다.

그 <의> 앞에서는 모세의 모든 율법은 차등으로 밀려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태복음 5장 20절)"




이웃을 증오하게 되면 오른 손과 오른 눈을 빼내어 버리는 게 나을 정도로

그 왕정에서는 <이웃사랑>이라는 행위가 셋째 하늘 천국으로 가는 강력한 잣대가 된다.

(예수님이 통치하는 왕정에서도 사람들은 죽고 영혼은 셋째 하늘 혹은 지옥으로 가야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초림에서 이 왕정을 세우시는데 실패하신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도저히 자신의 초림에서의 이 종말이 이해 할 수가 없어

하나님께 무어라 설명 좀 해달라고 탄원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태복음 26장 36절)"




예수님 입장에서는 초림에서 자신이 그토록 참혹하게 죽어야만 하는

하나님의 시나리오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냉혹한 플롯이었다.

하지만 하나님 입장에서는 초림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죽지 않고서는

사도 바울이 만들어 낼 교회시대의 서막을 열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 입장에서는 땀이 피로 변할 정도의 공포스러운 시나리오였지만

하나님 입장에서는 이 지구에 존재하는 수많은 인류,

즉 유태인이 아닌 이방인들을 천국으로 초대하는데

예수님의 피가 반드시 필요한 절대적 초법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은 하나님은 이 결정이 쉬웠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순간 하나님은 하늘의 모든 빛을 끄시고

통곡했다고 성경의 제자들은 기록하고 있다.

자, 이렇게 예수님의 초림에서의 왕정수립은 실패로 돌아가고

여기 인류 역사상 가장 희한한 유기체가 지구에 등장하는데 그것이 바로 <교회>이다.





2.하나님의 비밀 프로젝트, 교회!



교회는 천사들도 눈치 채지 못했고,

루시퍼도 예측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숨겨두었던 비밀 프로젝트였다.

인간들이 만일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를 대비해서

하나님께서 오래전부터 예비해놓았던 비밀 병기였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사도행전 2장 1절)"




자, 마침내 오순절 날 인류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교회시대가 성령의 도래로 시작된다.

이 구절은 오늘 날 한국을 장악한 순복음 교회가 얼마나 잘못 가르치고 있는지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순복음 교회가 인간이 구원받았을 때 일어나는 첫번째 특화된 현상,

방언이 얼마나 성경과 동떨어진 해석인지를 보여준다,.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모두 갈릴리 출신의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불의 혀처럼 갈라진 성령이 이들의 몸에 들어간 다음부터

이들은 갑자기 그곳에 모인 외국인들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다.


그들이 갑자기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포타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지방 언어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의 말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성령이 제 2외국어를 이 무식한 갈릴리인들에게 은사로 주신 것은

빨리 초대교회를 완성시키려는 목적에 있다.

여기에 순복음 교회가 주장하는 그 알아먹지 못하는 이상한 방언은

위의 어느 외국어 영역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순복음 교회는 이 방언 교리로 정말 많은 세력을 확장 시켰다.

하지만 기억하라,

당신이 천사의 방언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당신의 구원과 아무 관계없다고 바울은 이야기 하고 있다.

방언도 행위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가의 다락방에서 시작된 교회시대의 뼈대는 사도 바울이다.

완벽한 율법주의자,

뼈대 높은 가문에서 태어나 세상에 보이는 것이 없었던 청년 사울,

그는 당시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서 죽이는 맛에 살던 남자였다.

예수쟁이들을 많이 처단하면 할수록 사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율법을 완성한다고 믿었던 남자이다.

그는 그 날도 예수쟁이들의 집회 첩보를 입수하고 그들을 잡으러 다마세크로 향하던 길이었다.

한참 가는데 하늘에서 홀연히 빛이 내려오고 사울은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는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사도행전 9장 3절)"




사울은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예수를 만난 이후 그 충격으로 눈이 멀어버린다.

그리고 3일 동안 사경을 앓다 겨우 시력이 회복된 사울은

이후 홀로 짐을 꾸려 아라비아 사막으로 들어간다.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갈라디아서 1장 11절)"



바울은 아라비아의 뜨거운 모래 사막 위에서

치열한 고독  가운데서 자신이 율법주의자로서 살아왔던 지난 삶과 극렬하게 마주한다.

그는 이 사막 위에서 마침내 요한이 갔다는 셋째 하늘로 이끌려 올라간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고린도후서 12장2절)"




바울은 이때 예수님에게서 직접 들었던 그 표현할 수 없는 말들을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라디아서 1장 13절)"




신약성경의 대부분을 형성하고 있는 바울의 서신 속에 등장하는 교회법은

바울이 개인적으로 만들어낸 소견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울이 셋째 하늘에 가서 직접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교리라는 것이다.

그 계시의 핵심은 아래와 같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라디아서2장16절)"




자, 마침내 교회시대의 구원의 교리가 변경되었다.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받던 시대는 사라지고 오로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리스도의 무엇을 믿는단 말인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영원한 피흘림의 제사를 드렸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자, 쉽게 설명해보자.

당신은 태어나면서부터 무수한 죄를 짓는다.

동검도에서 평생을 제자들을 위해 헌신하며

죄가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우리 K 선생님 같은 도덕 군자도 죄를 짓는다.

짓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로마서에는 의로운 이는 없나니 하나도 없다 라고 했기 때문이다.

구약 시대에는 인간이 죄를 지으면 그 죄에 상응하는 속죄 제물을 가지고 성전에 나아가

제사장과 함께 죄의 속죄 예식을 치루어야 했다,

그래서 장막에는 1년 365일 피가 흥건했다.

제사장의 옷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하지만 사도 바울에서 시작된 신약 교회에서는 이 죄의 속죄 예식이

초간단한 방법으로 바뀐 것이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죄의 대속물로 돌아가셨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믿음은 단 한 번만으로 완벽하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로마서 8장 1절)"




단 한 번 믿음으로 다시는 죄에 대해서는 정죄함이 없다고 선언하신다.

충격적인 동시에 파격적인 조건이다.

그래서 라킨은 지금 시대를 <천국의 대 바겐세일 시대>라고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여호와 증인부터 몰몬교, 제 7 안식일 교회, 장로교, 감리교, 성공회,

엄청난 교회 집단들이 이 무한한 은혜의 교리를 변질시켜 놓았다.

각자 주장하는 바도 다양하고 이유도 천차 만별이다.

러셀은 우리가 여호와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참으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이다.

사도 바울은 결코 우리 이방인은 여호와의 증인이 되어서도 안되고

될 수도 없다고 못박는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로마서 8장 15절)"




우리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을 향해 주어진 호칭은 <아빠> 혹은 <아버지>밖에 없다.

바울의 서신 어디에도 <여호와>라는 이름이 우리 이방인들에게 주어졌다고 기록된 곳이 없다.

고작 우랄 알타이를 지나 한반도로 정착한 샘계열의 한국인들이

태생적으로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부르는 자체가 넌센스이다.

여호와는 유태인들에게만 주어진 유일신으로서의 하나님을 부를 때의  호칭이다.

뭐, 여호와라고 부른다고 탈 날 일은 없겠지만

다만 당신이 여호와의 증인이 되겠다고 이리 저리 날 뛸 때

하나님께서는 측은지심의 눈빛으로 당신을 쳐다볼 것이다.


"애들아, 너희들이 날 사랑하는 것은 갸륵하다만 촛점을 잘못 맞추었다"



오해하지 마라.

나는 여호와 증인들을 이단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을 되려 혐오하는 이 중에 하나이다.

여호와 증인들 만큼 정열적이고 순결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있을까?

이들은 검소하고 근면하고 자신의 행위에 있어 절제적이다.

지켜보면 한없이 가엽고 안타깝고 측은하고 그들의 열정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들을 보며 늘 생각한다.

나는 저들처럼 뜨겁게 예수님을 사랑한 적이 있는가?

80의 노모가 아침이 되면 곱게 차려입고 파수꾼의 길을 나선다.

숨이 가빠오고 허리는 구부러진다.

그들은 러셀이 만든 14만 4천에 들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전도의 행렬에 나선다.

하지만 기억하라,

신약 시대의 구원은 여호와를 증거하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오늘 날 장로교회, 감리교회, 오순절 교회의 주일 아침 예배에서

목사님들이 하는 설교중에서

구약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는가?

거의 70%에 육박한다.

1년 365일을 바울이 예수님으로부터 받아 정리한 교회의 사명과 임무를 설교해도 모자랄 판국에

수많은 목사들이 구약을 잡고 늘어진다.

그나마 그것도 자신이 대체 무슨 설교를 하는지도 모르는 설교가 태반이다.

구약을 설교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구약에도 우리가 본받아야 할 신앙의 선배들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21세기. 특히 세기말의 교회에서 설교의 비중은 바울의 서신이 70을 이루고

나머지는 30은 구약이나 4복음서로 채워져야 그것이 정상적인 교회의 모습이다.

CTS의 성서학당을 시청해보라.

거기에 출연한 목사들이 한결 같이 내어 던지는 말들은 글자 그대로 모호 투성이다.

출연 목사들의 칼럼은 구약과 신약이 뒤엉킨 채

청취자들의 귀에 달콤한 말들만 쏟아 놓는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구원이 뭐냐고 물으면 거기 출연한 목사들 모두

다시 또 모호한 말들을 늘어놓는다.

궤변이 궤변을 낳고 한 마디로 한국 교회는 총체적인 혼돈 속에서 휴거를 맞이하는 것이다.

그래서 라킨 목사님은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

앞으로 100년 뒤 도래할 현대 교회에서

구원받고 휴거될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에 대한 회의적인

결과표를 내어놓은 것이다.




3.교회 시대는 영원할 것인가?




(교회 시대는 위의 숫자 2에서 끝난다고 라킨은 말하고 있다)




교회 시대의 수명은 <이방인의 숫자>가 차면 끝난다고 바울은 기록하고 있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로마서11장21절)"




지금 시대는 이스라엘에게 구원이 막혀 있는 시대라고 바울은 이야기 하고 있다.

바울은 자신의 동족을 생각하면 심장이 불이 타고 억장이 무너진다고 기록했다.

만약 자신의 동족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차라리 자신이 지옥에 가도 좋다고 까지 기록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의 구원은 <이방인의 숫자>가 차기까지 막혀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천국은 무한한 은혜의 공간인 동시에

이방인들에게 할당된 입주 물량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다.

천국에 우리 이방인들에게 할당된 입주의 물량이 차게 되면

그때 이 교회 시대는 막을 내린다고 바울은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 입주 물량이 차는 시점을 라킨 목사님은 <다니엘의 70주>를 이용해서 대략의 시간법을 계산하셨다.

이 계산법은 본 강의에서 자세히 다룬다.

오해하지 마라,

조나단 유가 무슨 휴거의 날짜와 시간을 맞추는 것이 아니다.

그냥 대략의 때를 라킨의 해석을 통해 연구해볼 뿐이다.




(라킨은 다니엘이 꾼 꿈을 통해 이 이방인의 때(핑크색 부분)가 대략 언제 끝날 것인가를 유추하고 있다)



오늘 날 교회시대의 형제 자매들이 하나님을 여호와라 부르며

구약의 율법을 준수해서 구원 받으려는 마음의 상태는

교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바울은 이야기 하고 있다.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로마서11장 17절~)"




우리 이방인들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원가지(이스라엘)에게 접붙은

곁가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우리 이방인들이 유지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뿌리인 유태인들이 영양분을 공급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억하라,

성경 신구약의 저자들 모두가 유태인들이다.

우리는 그들이 쓴 성경 때문에 오늘도 숨을 유지하고 있다.

원가지들이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꺾이운 것이며

우리는 믿음으로 곁가지임에도 불구하고

더욱 풍성하게 자라고 있다고 바울은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런데 곁가지의 주제를 망각한 채 원가지의 자리까지 차지하려고

욕심을 부릴 때는 원가지도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께서

곁가지인 우리 이방인을 아끼겠느냐는 말이다.


무서운 말이다.


카톨릭과 여호와 증인들을 정확하게 예측한 바울의 예언이다.

로마 카톨릭은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다윗의 성전에 교황청을 앉히기 위해

지난 수세기 동안 십자가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유태인들을 몰살시킨 주범들이다.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교황청에 유태인을 몰살하고 예루살렘을 주겠다고 딜을 했을 때도

그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 로마 카톨릭이다.

그만큼 이방인이 유태인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는 제안은 매혹적이고 달콤하다.

여호와 증인들은 자신들이 곁가지 주제임을 완전히 망각한 이들이다.

끊임없이 희생 제사를 드리고 구약의 율법을 준수함으로서

자신들이 유태인의 자격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다.

완전히 화살의 과녁을 잘못 조준한 이들이다.

한 마디로 여호와 증인이 되는 순간부터

평생을 이번 생을 개고생만 하다가 죽는 것이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이들이 아직도 이 증인 속에 있다.

나는 그들을 꼭 그곳에서 꺼집어내어 휴거의 대열에 동참시켜야 한다.


여호와 증인보다 더 비겁한 논리를 펼치는 교회가 장로교와 감리교회이다.

이들은 어떨 때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하고

어떨 때는 주일 성수와 십일조, 성도의 성결 없이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아주 야릇한 구원의 논조를 설파한다.

한 마디로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는 기조를 선택한 전형적인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선조 캘빈은 <구원은 예정된 자들에게만 주어진 은혜>라는

그 유명한 <예정론>으로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의 확신없이 살다가 가게 만든 주인공이다.


거듭 말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교회 시대는 은혜의 시대이다.

이 한 생을 살면서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구원의 확신>이 없이 살다가는 사람들이야 말로

가장 불쌍한 자들이다.

조만간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대실종 사건이 지구를 덮친다.

그리고 영원할 것만 같았던 은혜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휴거와 함께 시작되는 요한계시록의 <7년 대환란> 기간 동안

구약의 두 사람이 다시 돌아온다.





4.다시 온 모세와 엘리야




(위의 도표 3의 기간이 다시 율법의 시대로 회귀했다는 중요 단서, 두 사람이 지구에 온다)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요한계시록11장 3절~)




마태복음 25장에서 중단되었던 구약의 시대가 다시 열렸다.

그 예표가 바로 지구로 돌아온 두 선지자이다.

대환란의 중간 지점에 14만 4천이 하늘로 휴거되고

그들의 바통을 이어받아 천국에서 두 사람이 지구로 온다.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

지난 2천년간 수많은 이단 교주들을 탄생시킨 문제의 구절이다.

교주들은 죄다 자신이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외쳤다.

하지만 이들 거짓 교주들은 이어지는 구절에서 이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가

적그리스도에게 대항하다 참혹하게 죽는다는 것을 간과한다.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요한계시록 11장 7절)"




이 두 증인이 모세와 엘리야 라는 것은 굳이 깊이 고민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엘리야가 오십부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너의 오십 명을 사를지로다 하매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 그와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랐더라(열왕기하1장 10절)"




다혈질적이고 심약했던 엘리야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군사 50인을

아무 죄책감없이 하늘에서 불을 끌어내려 태워죽인 사람이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대한 불평 불만을 입에 달고 살았던 선지자였다.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선지자 중에 가장 특이한 인물 중 한 사람이다.

이런 엘리야를 하나님께서는 어느 날 불마차를 보내어

살아 있는 채로 셋째 하늘로 데려가 버린다.

그 이후 수많은 유태인 민담 속에는

이 엘리야가 다시 지구에 온다는 전설이 횡행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침례 요한에게 사람들은 네가 다시 온 엘리야냐고 물었을 정도이니까 말이다.

자, 이제 그 문제의 사람, 엘리야가 계시록에서 다시 등장한다.

우리는 계시록에서 하늘에서 불을 끌어내려 적그리스도와 대항하는 선지자가

엘리야 임은 쉽게 유추해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두번 째 남자, 물을 피로 변하게 하는 남자가 모세임은

신약성경 유다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유다서1장 9절)




모세는 가나안 땅에 입성하지 못하고 가나안이 가장 잘 보이는 느보산에서 눈을 감았다.

그런데 신약의 유다서에는 이상한 문구가 등장한다.

마귀가 천사장 미가엘에게 <모세의 시체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 것이다.

루시퍼는 다시 불안해 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시체를 숨겨놓고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지 미치도록 불안해진 것이다.

혹시 자신을 속여 모세를 산 채로 하늘로 데리고 간 것은 아닐까?

이때, 천사장 미가엘도 하나님의 계획을 몰랐기 때문에

다만 비방의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라고만 하고 입을 닫았다.


교회가 은혜 시대의 하나님의 비밀병기였다면

앞으로 올 7년 대환란 시대의 하나님의 비밀 병기는 <14만 4천명의 숫총각 전도사들>과

바로 <모세와 엘리야>이다.

하나님은 이들을 통해 유태인들을 한 날 한시에 구원시키신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로마서11장21절)"




마지막 때에 유태인들이 한 날 한 시에 구원받는 구절은 구약 곳곳에 등장한다.

하지만 그 조건은 먼저 <이방인의 수>가 충족되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지금의 은혜시대가 영원할 것이라고 믿지 마라.

조만간 천국 입주 티켓이 모두 다 소진된다.

그리고 세상은 다시 율법의 시대로 회귀한다.


다시 온 모세와 엘리야는 자신들이 가진 초능력으로

(기억하는가, 모세가 어떻게 애굽의 파라오 왕과 싸웠는지를!)

극렬하게 적그리스도와 싸운다.

하늘에서 불을 끌어 당겨 적그리스도의 군대들을 불사지르고

모세는 바다를 일으켜 적그리스도의 군대들을 참수시킨다.

영화 엑스 맨에서 보았던 그런 전쟁의 100배가 넘는 대규모 SF전쟁이

이제 7년 대환란의 중간 지점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 두 사람은 적그리스도에게 패배하고 참수당한다.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그 때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요한계시록 11장 9절~)"




휴거가 한 번 뿐이라는 종말론자의 주장은 이번에도 틀렸다.

모세와 엘리야는 다시 살아나서 전 세계가 생중계 되는 가운데 하늘로 휴거된다.

이때에도 어김없이 지진이 뒤따른다.

기억하라, 모든 휴거에는 지진이 뒤따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이 휴거인지, 아니면 지진인지 혼동 속에서 믿음을 갖지 못한다.

이들이 올라가고 이제 적그리스도는 인류 최후의 전쟁

<아마겟돈 전쟁>을 준비한다.




(적그리스도가 이토록 강한데는 총체적인 악의 세력이 한 사람에게 집약되었다고 라킨은 말하고 있다)



이제, 한 남자가 지구에 온다.

그가 오면 지금의 은혜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이제 7년간 전무후무한 지옥의 문이 열린다.

이 대환란의 기간을 피하라,

아무도 맞서 싸울 수 없다.

무조건 도망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드려라.

그 도주는 오로지 <휴거>밖에 없다.










기간/2020년 4월 4일 매주 토요일 오후 6시~ 10주간(중간에 불참하실 분 절대 신청하지 말 것!)
장소/DRFA 동검도 365예술극장

신청/카카오 아이디 drfacokr로 문의 또는 아래 링크를 클릭 후 회원가입 후 댓글란에 계시록 강의를 듣어야히는 이유를 적고 수강신청을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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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FA,JONATHAN]











LIST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서문,a prolog(ue)

"조나단 유가 클라렌스 라킨을 만났을 때"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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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회
천국 혹은 새 예루살렘성(城)
(요한계시록 21~2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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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회
적 그리스도
(요한계시록 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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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회
휴거 그리고 제 7의 봉인
(요한계시록 5~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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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회
"13개의 대재앙"
(요한계시록 6~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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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회
"14만 4천명의 의인"
(요한계시록 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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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회
"다시 온 모세와 엘리야"
(요한계시록 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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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회
"아, 바벨론!"
(요한계시록 17~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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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회
"재림, 그리고 아마겟돈 전쟁"
(요한계시록 1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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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회
"교회의 실패"
(요한계시록 1~3장)
+1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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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회(완결)
"하나님은 선한 분이신가?"
(요한계시록 4장)
+1
[부록]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다니엘의 70주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Daniel's 70 WEEK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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