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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7 회
"아, 바벨론!"
(요한계시록 17~18장)




2019/12/22 유감독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7 회
"아, 바벨론!"
(요한계시록 17~18장)
(주의!  이 서머리를 읽기 전에 반드시 요한계시록 17~18장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17장 바로가기(클릭)
http://kcm.co.kr/bible/kor/Rev17.html





1.첫번째 바벨론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팔레스타인 영토는 추후 펼쳐질 천년왕국에서도 여전히 유태 10지파가 통치할 것이며
이 영토에 대한 탐욕으로 세상을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라킨 목사는 말하고 있다)




잠시 6회와 7회 사이에 게으름을 피우던 내게 결국은 큰 화가 닥쳤다.

지난 4일간 새벽 6시만 되면 하나님께서 꿈 속에서

"왜 계시록 연재를 중단하였느냐고" 엄하게 질책하셨지만

그래도 고집을 피우고 극장 프로그램에 몰두하다가 결국은 오늘 큰 화를 당했다.


아직도 다리가 떨리고 심장이 벌렁거리지만

나는 왜 항상 맞고서야 정신을 차리는지 다시금 내 자신을 힐책할 뿐이다.

요한계시록은 모두 10회 강의로 이루어져 있으며 오늘 마침내 7회에 도달했다.

서문부터 6회에 이어지는 강의 서머리를 읽지 않은 분들은

먼저 앞의 글을 읽기를 간곡히 부탁한다.




앞의 글 바로 가기 클릭!

http://www.drfa.co.kr/bbs/zboard.php?catarnum=12&category=6&id=thereader&page=1&page_num=17&sn=off&ss=on&sc=on&keyword=&select_arrange=headnum&desc=asc



오늘은 요한 계시록 중 가장 난해하다는  17장과 18장에 도달했다.

이 두 장에 걸쳐 두 개의 바벨론이 등장한다.

요한이 묘사한 내용으로 봐서는 이 두 개의 바벨론은 그냥 평범한 바벨론이 아니고

앞으로 펼쳐질 7년 대환란에 지구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무슨 까닭인지 이 두 개의 바벨론은 각각 어느 날 완벽하게 멸망한다.

흔적조차 남지 않는 멸망의 모습이 거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과 흡싸하다.

대체 무슨 까닭일까?

왜 두 개의 바벨론은 계시록의 종결 부분에 등장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온갖 증오를 받으며 처절하게 지구상에서 몰락되어 가야 할까?

요한은 그 최후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은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의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요한계시록17:16)"



계시록에 등장하는 <짐승>이란 단어는 무조건 적그리스도로 해석하면 된다고

나는 앞의 강의 6회에 걸쳐  목청이 닳도록 설명했다.

그런데 여기 적그리스도의 등에 올라탄 채 멸망하는 여자는 누구인가?

여자의 정체에 대해서는 4절부터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 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요한계시록17장4절)




여자는 일곱 개의 머리와 열 개의 뿔을 단 적 그리스도를 타고 있다.

즉, 여자와 적그리스도는 서로 공생의 관계에 있다.




(라킨이 그린 적 그리스도를 타고 있는 이 여자는 누구인가?)



적그리스도가 일곱 개의 머리와 열 뿔의 배경을 가지고 세상에 올 것임은

계시록 곳곳에 적혀 있다.

적그리스도는 바벨로니아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니므롯과

이집트의 대통령 파라오,

앗시리아의  산헤립

다시 또 신바벨로니아의 느부가넷살

페르시아의 다리오

그리스의 알렉산더

로마의 카이사 왕을 모두 합친 모습으로 세상에 다시 온다.

위에 열거한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7명의 왕의  공통적인 특징은 유태인을 박멸하고

그들의 땅, 약속의 땅, 이스라엘을 영구 거점으로 삼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올 적그리스도는 위의 7명의 왕의 모습을 갖고

지중해를 거점으로 한 10개의 연합국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등장한다.

그리고 자신의 등에는 한 여자를 태우는데 그것이 바로 로마 카톨릭이다.


적그리스도의 등에 탄 음녀가 로마 카톨릭이라고 해석한 신학자는 라킨이 처음이 아니다.

위대한 현대 신학자이자 르뽀 작가인 폴 블랑샤르는 그의 저서

<미국의 자유와 카톨릭의 세력>이란 명저를 통해

계시록 17장의 이 음녀 바벨론이

왜 카톨릭일 수밖에 없는지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다.

그에 걸맞은 신학자 히슬롭의 저서 <두 개의 바빌론>에서도

역시 17장의 바벨론이 카톨릭인 이유를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

이들이 오랜 추적 끝에  17장의 음녀를 로마 카톨릭이라고 정의 내리는 데는

몇 가지 큰 이유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 잔을 가졌는데 (요한계시록17장4절)"




적그리스도를 올라 탄 음녀는 일단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치장한 채 손에는 금잔을 들고 있다.

요한이 밧모섬에서 이 환상을 볼 때는 아직 로마 카톨릭은 세상에 등장하지 않았을 때이다.

로마 카톨릭은 요한이 세상을 떠나고서야 200년이 지나 AD325년 니케아 종교 회의에서

정식으로 세상에 나오게 된다.

그래서 요한은 앞으로 세상에 등장할 음녀에 대해서 자신은 이해불가이지만

읽는 독자들을 위해 가장 인상적인 이미지 몇 장면을 재빨리 머리 속에 입력해야 했다.

요한이 가장 먼저 음녀에 대해서 받은 첫인상은 어떤 종교적인  모습들이다.

자주 빛과 보석과 금잔을 든 여자의 모습은 거룩한 종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요한은 이어서 가장 결정적인 단서를 던져준다.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요한계시록17장9절)"




그 여자는 일곱 산 위에 앉아 있다.

시오노 나나미의 베스트셀러  <로마인 이야기>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족(갈리아인)이나 게르만족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졌던 로마인이

어떻게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로마의 관문인

로마의 일곱 산을 올라보는 것으로 로마 여행을 시작해보라"


사람들은 시오노 나나미의 이 책을 읽고 로마를 여행하면

가장 먼저 로마의 일곱 산,

퀴넬날네, 비미날레, 에스퀼리노, 카피톨리노, 팔라티노, 첼리오, 아벤티노

해발고도 50미터도 안되는 일곱 개의 산을 찾는다.

DRFA의 히트작, 마리오 란자의 <로마의 언덕>에서의 오리지널 제목 역시

<로마의 일곱 산>이다.

요한은 음녀의 정체를 알 수 있는 가장 큰 단서는

바로 그녀가 앉은 일곱 산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요한은 계속해서 그녀가 한 행위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놀랍게 여기고 크게 놀랍게 여기니"(요한계시록 17장6절)




요한이 살던 당시에는 로마 카톨릭이 없었기 때문에

요한은 이 여자가 한 행위에 대해 놀라고 또 놀라고 또 놀랐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유는 이 음녀가 난데 없이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를 바가지에 담아

포도주처럼 마시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여자는 누구인가?

일곱 개의 산 위에 앉아 자주빛과 붉은 옷을 입고 손에는 금잔을 들고 그 금잔으로

예수를 증거하는 이들의 피를 퍼마시고 있는 이 여자는 누구인가?


조나단 유는 앞의 6번의 강의를 통해 <7년 대환란> 기간에는 예수의 증인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곳에는 앞으로  펼쳐질 천년왕국으로 인도하려는 천년왕국 복음을 전하는

14만 4천의 어린양의 증인들이 주축을 이루는 세계관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 음녀는 대체 언제부터 존재했길래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해 있었던 것일까?



"암흑 시대라고 불리우는 1200년의 기간 동안 5000만명의 성도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카톨릭의 종교재판대 위에서 죽어갔다.  

이는 100년에 평균 400만명 이상이 죽은 인류 최대의 대학살인데

인간의 머리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J. M. 캐롤 박사,The Trail of Blood에서'-



역사상 라킨 만큼이나 위대한 신학자 캐롤 박사님의 저서에 나오는 구절이다.

J. M. 캐롤 박사에 의하면 소위 암흑시대라고 불리우는 1200년의 기간 동안만에도

5000만명의 성도들이 카톨릭의 종교재판대 위에서 죽어갔다고 말한다.

이는 100년에 평균 400만명 이상이 살해되었다는 말인데

바꾸어 말하면 100년에 싱가폴 나라가 하나씩 사라졌다는 말이 된다.

대체 로마 카톨릭은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여야만 했을까?


로마 카톨릭의 정식 기원은 AD325년 그 유명한 니케아 회의이다.

로마 카톨릭은 자신들의 기원을 베드로라고 주장한다.

고고학자들에 의해 속속 밝혀지는 사실들은 베드로는

단 한번도 로마에 간 적이 없으며 베드로는 결코 로마 카톨릭을 창립한 적이 없다는 고증만 드러나고 있다.

카톨릭의 기원은 니케아 회의로 A.D.325년

콘스탄틴에 대제에 의해 니케아에서 소집된다.

니케아 회의는 교회 회의의 효시(嚆矢)로서 당대 최고 사건이자

교회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대한 분기점으로 자리 잡는다.

콘스탄틴 대제는 각 지방의 교회 감독들에게 안내장을 띄웠는데

한 지역 교회에서 2인의 장로와 3인의 수행원이 회의에 참석하면

모든 체재 비용과 왕복 여비 및 열 돈이 넘는 기념 금반지를

국고에서 지출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하여 소집된 니케아 회의에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에게 돌려야 한다는

국가과 교회의 분립원칙을 고수하던

서방 교회의 목사들은 거의 참석하지 않은 반면

계시록의 서문에 등장하는 돈을 사랑하는 일곱 교회의 발람 목사들은

300여명이나 참석하게 된다

(실제로 이 회의에는 첫사랑을 잃어버렸다고 질타받던 에베소 교회의 목사도 참석한다).

콘스탄틴 황제의 겉으로 드러난 회의 의제는

당시 최고의 스타 목사로 떠오르던 리비아 출신의 아리우스(Arius) 목사가 발표한 책이

삼위일체설에 위배된다는 이단성 규정이 목표였지만

콘스탄틴의 마음 깊은 곳에는 니므롯의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굉장히 미남 목사로 알려진 아리우스는 당시 자신의 저서

'향연(饗宴,Thaleia)'을 통해 이미 모든 교회의 주목을 받고 있었고

무엇보다 알렉산드리아의 목사 알렉산더와 극렬한 논쟁 중에 있었기에

쉽게 콘스탄틴의 미끼로 사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리우스를 지지하는 유세비우스와 칼케돈, 에베소 교회의 목사들과

알렉산더를 지지하는 아다나시우스와 호시우스 사이의

불꽃 튀는 이단 논쟁을 지켜보며

콘스탄틴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콘스탄틴이 진정으로 노렸던 목적은 이단 규정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그동안 자신이 박해하던 '교회'를 달래서 국가의 틀 안에서

연합하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콘스탄틴은 연합된 교회가 발휘하는 '교리 입법'은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다.

그야 말로 콘스탄틴은 계시록에 요한이 본 적그리스도의 일곱개의 머리 중 일곱번째 머리이다.

콘스탄틴은 로마 제국이 영원하지 못할 것을 알았다.

로마 제국이 세상 속에서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은

종교를 만들어내어 교회 속에 숨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콘스탄틴이 종교의 샘플로 삼았던 것은 바로 자신의 고조부

BC74년에 살았던 줄리어스 시저가 섬겼던 에트투리아 종교였다.

콘스탄틴은 이 에트투리아 종교에 어떡하든 사도 바울이 피땀 흘려 완성시켰던

초대 기독교를 혼합하고 싶어했던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계략은 성공하는데 바로 A.D.325년 그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삼위일체설을 확립하면서(물론 기독교에서 삼위일체는 중요하다)

앞으로 지구의 2천년을 좌지우지할 그 유명한 로마 카톨릭이 탄생하게 된다.

이 로마 카톨릭은 지난 2000년간 무수한 그리스도인들을 피의 숙청으로 참수시켜나갔다.

이유는 단 하나, 줄리어스 시저가 섬겼던 에트투리아 종교의 절대적인 여신

바벨론의 최초의 대통령 니므롯의 아내

세미라미스 여제를 기독교 속으로 품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왼쪽이 줄리어스가 숭배하던 세미라미스 동상, 오른쪽 카톨릭 성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리아 상, 두 왕관이 완벽하게 동일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정말 단 한 번이라도 의심해보지 않았는가?

로마 카톨릭이 왜 그토록 전 세계로부터 욕을 먹으면서도

마리아 숭배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를?





(카톨릭은 예수님 뿐만 아니라 마리아를 통해서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가르치고 또 그렇게 믿는다)



AD 381년에 로마 카톨릭은 다시 또 정기 교회 연합 회의를 소집하고

마침내 마리아 숭배를 정식 교리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때 회의에서 극렬한 논쟁이 오고 갔고 수많은 교회들이 뒤늦게 카톨릭의 정체를 의심하면서

카톨릭으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얼마나 달콤한 말인가?

십자가 위에서 죽어가는 사랑하는 자식을 온 가슴으로 피흘리며 받아낸

그의 어머니 성모를 구원자로 내세울 수 있다는 교리는

수많은 로맨티스트 목사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장6절)"




기억하라,

하나님이 사시는 천국의 도성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딱 한가지 길밖에 없다.

그것은 교황도 아니고,마리아도 아니고

지금 한국을 휩쓸고 있는 L교주도 아니다,

러셀이나 여호와를 증거해봤자 백 날 헛수고이다.

딱 한 가지 방법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내 죄를

모두 십자가에서 그 값의 대가를 지불했다는 것을 믿는 수밖에 없다.

기억하라!

오늘 날 평화의 옷을 입고 전 세계에 평화의 상징이 된 로마 카톨릭은

지난 2천년 동안 5천만명의 그리스도인들을 종교 재판대 위에서

살육한 종교의 음녀 바벨론 제국의 부활이다!

순교에는 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마리아 숭배를 이단으로 규정한 것과

성도 스스로가 성경을 해석하려는 노력을 보인 참기독교인들의 결의 때문이었다.


자, 하지만 영원할 것만 같았던 이 음녀 바벨론을

무슨 연유에서인지 오늘 17장에서 적그리스도는 갑자기

완벽하게 지구상에서 멸망시킨다.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은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의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요한계시록17:16)"




불로 사른다는 것은 그 흔적도 지구상에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자신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절대 지지기반이 되어준 음녀를

이제는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완전히 패망시켜버린다.

추론해 보건대 교황청의 수장 교황을 공개 처형하는 퍼포먼스를 하일라이트로 삼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대체 왜 적그리스도는 그동안 자신의 지지기반이었던 카톨릭을 이토록 무참하게 짓밟는 것일까?

라킨은 두 가지 추측을 내어놓는다.

하나는 로마 카톨릭의 갑작스런 회심이다.

로마 카톨릭이 유태인과 마찬가지로 적그리스도의 정체를 알고

그가 다시 온 그리스도가 아닌 것을 알고는 경배하기를 중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첫번째 추측은 요한의 서술과 어울리지가 않는다.

만약에 음녀가 회개하고 순교를 선택했다면 요한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녀에게

음녀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번째 추론은 무엇인가?

바로 음녀가 적그리스도에게 약속했던 이스라엘 성전을 내어놓으라고 선전포고를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로마 카톨릭은 역사 속에서 자신들의 최대의 숙원사업,

예루살렘의 다윗의 성전에 교황청을 옮기는 최고의 숙원사업을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는 집단이다.

현재 이스라엘을 여행해보면 성지 순례 코스의 80%는 이미 카톨릭이 다 매입해 놓았다.

하지만 단 하나, 다윗의 성전 만큼은 이슬람으로부터 빼앗지 못했다.

지난 2천년 간 이 다윗의 성전을 둘러싸고 지구촌은

십자가 전쟁이라는 어마어마한 대살육을 몇 차례에 거쳐 치루어야 했다.

아마도 7년 대환란 동안 로마 카톨릭은 적그리스도로부터 이 다윗의 성전을 돌려받으려고 하다가

적그리스도에게 멸망당할 확률이 높다고 라킨 목사님은 밝히고 있다.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요한계시록13장4절)"



누누히 말하지만 7년대환란 동안 적그리스도는 아무도 못이긴다.

그에게 대적하는 자는 모두 죽음만이 기다린다.

부활한 모세도, 엘리야도 모두 죽었다,

오죽하면 예수님은 14만 4천명의 유태인 제자들도 하늘로 피신 시키셨다.

그는 난공불락이며, 악의 모든 총체이다.


여기서 하나의 오해를 집고 넘어가겠다.

카톨릭에는 구원이 없을 것이라는 기독교 일부 신학자의 말에

라킨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한다.

왜냐면 계시록 18장 4절에는 이렇게 적혀 있기 때문이다.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카톨릭 속의 자신이 사랑하는 백성을 애타게 찾고 있다.

카톨릭 속에는 어느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신부님과 수녀님,그리고 신자들이 수두룩하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엄중 경고하고 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무서운 말씀이다.

기회가 있을 때 하나님의 이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2.두번째 바벨론



자, 이제 계시록 18장에 문제의 두번째 바벨론이 등장한다.

그동안 역사 속 수많은 성경학자들이 계시록이 비유의 책이자 허구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이야기 할 때

이 18장에 등장하는 거대한 도시 바벨론의 몰락을 예로 들었다.

이 지구상에 그 어떤 도시도 계시록 18장의 바벨론과 닮은 도시는 없기 때문이다.

이 도시에는 가난이 없다.

24시간 음악과 파티와 향락과 무역만 존재한다.

자, 요한이 묘사한 도시의 모습을 보자.



"(너)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그가 얼마나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통과 애통함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땅의 상인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들의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그릇이요

값진 나무와 구리와 철과 대리석으로 만든 각종 그릇이요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이요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상상이 가는가?

이 도시의 위엄은 너무도 어마 어마해서 도도하기가 이를 데 없다.

하지만 이 도시가 단 1시간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고 요한은 기록하고 있다.



"이에 한 힘 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이르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비참하게 던져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21절)

그러한 부가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17절)"




뉴욕도, 파리도, 세상의 그 어떤 도시도 거지가 존재하고 가난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바벨론 도시는 완벽하게 부가 지배하고 있다.

라킨이 계시록 책을 쓸 당시에는 이런 유토피아적인 도시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신학자들이 계시록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라킨은 자신의 계시록 강해에서 아래와 같이 밝히고 있다.



"고대 도시 바벨론이 부활하여 이 시대 마지막에  일어날

놀라운 사건의 한 가운데 서게 될 것이다.

계시록 18장의 바벨론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라킨의 이 예언을 많은 학자들은 비웃었지만 우리는 라킨의 예언에서

가장 눈여겨 보아야 할 사항이 하나 더 있다.



"부활한 그 바벨론은 많은 일을 하겠지만

그 중에 특히 한 가지 고대 바벨론 도시의 가장 큰 수수께끼이자 특징이었던

<공중 정원>을 재건하는 일을 할 확률이 높다"



라킨의 위대한 예지력은 어김없이 현실로 나타났다,

2016년 4월 11일에 외신으로부터 한 기사가 타진된다.

기사의 제목은 <두바이에 또 최고층 건물,현대판 '바빌론 공중정원' 재연>이 그것이다.





('더 타워'의 조감도 설명회에 모여든 사람들)


두바이의 공식 종교는 이슬람교이다.

두바이에 들어설 초고층 건물 '더 타워'는

두바이에 현존하는 세계 최고층 빌딩인 부르즈칼리파 보다 높은 건물이다.

모든 대표적인 건물의 디자인은 이슬람 사원의 첨탑 모양을 크게 벗어나면 안된다.

'더 타워' 건립에는 10억달러(약 1조1472억원)가 투입되며

현재 두바이크릭에 짓고있는 6㎢ 면적의 주상복합 지구 안에 들어설 예정이다.

스페인 출신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 바야스가  설계를 하고

완공될 경우 '더 타워'는 828m 높이의 부르즈칼리파를 뛰어넘는 높이가 된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이 건물의 꼭대기에 회전형 발코니와 공중정원이 들어선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바빌론 공중 정원'의 재연이 실현되는 것이다.


나는 라킨이 예언한 그 고대 바벨론 도시의 재건이

두바이라고 강력하게 확신한다.

왜냐면 라킨은 이 도시가 어느 한 순간에

모래 사막 속으로 단 1시간 만에 파묻힐 것이라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대체 이 부활한 바벨론은 무슨 연유로,

이토록 갑작스런 종말을 맞이하게 되는가?

라킨은 계속해서 이 바벨론의 몰락이

적그리스도로 하여금 세계 제 3차 대전,

즉, 인류 최후의 전쟁으로 가는 어떤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말하며

19장에 묘사된 인류최후의 전쟁과 바벨론 도시의 연관성을 풀어나가고 있다.


이 신흥 바벨론의 등장 배경과 운명,

종말이 아마겟돈 전쟁에 미치는 연관관계에 대해서는

본 강의에서 상세하게 다루도록 하겠다.

만약 라킨의 해석이 어느 정도 타당하다면

중요한 것은 이 신흥 바벨론을 우리가 가시적으로 볼 수 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은 교회의 휴거의 시점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예표가 될 것임을 묵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자, 다음 장에서는 <7년대환란>의 마지막 정점,

인류 최후의 종말의 전쟁, <아마겟돈 전쟁>으로 들어가보도록 하겠다.

거듭 말하지만 조나단 유의 <요한 계시록 강의>는 서문부터 차근 차근 읽어야 한다.

이 모든 플롯은 내가 짜는 것도 있지만...

나는 감하 말하지만 많은 부분이 성령님께서 인도하고 계심을 믿는다.


병상에 누워 있는 사랑하는 R에서

예수님의 어루만짐이 함께하기를 바라며...

주여, 게으른 종을 용서하소서!









기간/2020년 4월 4일 매주 토요일 오후 6시~ 10주간(중간에 불참하실 분 절대 신청하지 말 것!)

장소/DRFA 동검도 365예술극장

신청/카카오 아이디 drfacokr로 문의 또는 아래 링크를 클릭 후 회원가입 후 댓글란에 계시록 강의를 듣어야히는 이유를 적고 수강신청을 해주세요.

자격/반드시 요한계시록을 10번 이상 읽으신 분!,그리고 강의 서머리를 최소한 2번 이상 정독하신 분!


바로가기 링크(클릭)
http://www.drfa.co.kr/bbs/zboard.php?id=thereader&page=1&sn1=&divpage=1&category=6&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113


[DRFA,JONATHAN]










LIST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서문,a prolog(ue)

"조나단 유가 클라렌스 라킨을 만났을 때"
+6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1 회
천국 혹은 새 예루살렘성(城)
(요한계시록 21~22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2 회
적 그리스도
(요한계시록 13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3 회
휴거 그리고 제 7의 봉인
(요한계시록 5~6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4 회
"13개의 대재앙"
(요한계시록 6~16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5 회
"14만 4천명의 의인"
(요한계시록 7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6 회
"다시 온 모세와 엘리야"
(요한계시록 11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7 회
"아, 바벨론!"
(요한계시록 17~18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8 회
"재림, 그리고 아마겟돈 전쟁"
(요한계시록 19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9 회
"교회의 실패"
(요한계시록 1~3장)
+1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10 회(완결)
"하나님은 선한 분이신가?"
(요한계시록 4장)
+1
[부록]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다니엘의 70주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Daniel's 70 WEEK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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