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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9 회
"교회의 실패"
(요한계시록 1~3장)




2019/12/22 유감독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9 회
"교회의 실패"
(요한계시록 1~3장)
(주의!  이 서머리를 읽기 전에 반드시 요한계시록 1~3장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1~3장 바로가기(클릭)
http://kcm.co.kr/bible/kor/Rev1.html



요한계시록은 모두 10회 강의로 이루어져 있으며 오늘 마침내 9회에 도달했다.

서문부터 8회에 이어지는 강의 서머리를 읽지 않은 분들은

먼저 앞의 글을 읽기를 간곡히 부탁한다.

그리고 강의 서머리를 최소한 2번 이상 숙독하지 않은 분들은

조나단 유의 계시록 강의를 신청할 수 없음을

미리 알려드린다.

4월 4일부터 있을 조나단 유의 계시록 강의는 어쩌면 내 생애 딱 한 번 있는 강의로

진정으로 갈급하는 영혼들 소수의 분들만 모시고 10주간 강의를 진행한다.

이 10주가 당신 생애를 완전히 바꿀 수 있음을 부디 인지하기를 소원해본다.


지금까지 조나단 유의 계시록 서머리 바로 가기 클릭!

http://www.drfa.co.kr/bbs/zboard.php?catarnum=12&category=6&id=thereader&page=1&page_num=17&sn=off&ss=on&sc=on&keyword=&select_arrange=headnum&desc=asc






1.일곱 교회에게 보내는 편지





(라킨은 구원의 복음은 시대마다 각기 다른 룰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현재 우리가 속한 2번의 시대, 즉 <교회시대>는 급속하게 불완전한 타협을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요한계시록1장11절)"





계시록은 지금의 터기,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한다.

계시록은 그 포문부터가 해석의 갈래에서 독자들을 혼돈시킨다.

왜냐면 수신자인 일곱 교회의 상태가 영 심상치가 않기 때문이다.

일곱 교회 모두 요한의 편지를 통해 예수님으로부터 신랄한 꾸중을 듣기 때문이다.

계시록은 AD91년에서 96년 사이의 어느 한 시점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수많은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증명되어 이제 자명한 사실이 되었다.

기록된 이 시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 시기는 네로의 그 피끓는 단두대가 AD70년을 기점으로 종식되고

도미티안 황제가 통치하던 시대였다.

네로는 초대 기독교인들을 죽이다 죽이다 분이 풀리지 않아

AD70년 자신의 신복 티투스 장군을 보내어 다윗의 성전을

돌 하나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을 정도로 파괴시킨 악의 화신이었다.

네로에 이은 도미티안 황제의 초대교회를 향한 박해는 더욱 더 광적으로 치달아

그는  자신을 '주와 하나님, Dominus et Deus'로 숭배할 것을 로마 전역에 명령한다.

또한 로마 제국의 이름을 '영원한 제국,Eternal Empire)으로,

자신의 이름은 '영원한 왕,Everlasting King'으로 명명한다.

예수를 믿는 것은 곧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던 시기였다.

그런 초대교회의 운명 앞에서

예수님은 요한을 통해  딱 일곱 교회를 선택해서 편지를 보내고는

편지 전부를 시종 비탄과 꾸지람으로 가득 채웠다는 것은

여러가지로 모순을 내포한다.

지금의 터키 땅, 그 서쪽 끝에 있던 이 일곱 교회의 주변에는 당시 꽤 유명한 초대교회들이 존재했다,

그 유명한 골로새서의 주인공 골로새 교회와 히에라폴리 교회,

그리고 사도행전 20장에 등장하는

트로아 교회가 그것이다.

하지만 왜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교회 가운데서 딱 7개의 교회를 선택해서

알수 없는 암호와도 같은 비난을 쏟아내었을까?





(일곱 교회의 위치)





(라킨은 이 일곱교회가 앞으로 펼쳐질 2천년간의 교회의 모습이 될 것이라고 해석한다)




조나단 유는 앞선 8개의 서머리를 통해

계시록은 큰 바벨론으로 표현되는 로마 카톨릭의 탄생과 진행,

그리고 최후의 몰락을 기록한 대서사시라고 거듭 설명했다.

로마 제국은 초대교회에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자신들이 유태인들과 함께 손을 잡고 죽였던 예수가 부활해서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부활한 이후의 로마의 황제들은

이 강박관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대부분이 정신질환을 앓았었다고 여러 고문서가 증언하고 있다.

부활한 예수가 엄청난 괴력으로 로마제국을 몰살 시킬 것이라는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네로에서 시작해서 수많은 황제들이 초대 기독교를 박해했다,

하지만 죽여도 죽여도 기독교는 더욱 번창했고 결국은

콘스탄틴 황제에 이르러서는 획기적인 사고의 발상을 하기에 이른다.

그는 어차피 제국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던 천재였다,

그는 로마 제국을 영속시키는 방법은 차라리 기독교 속으로 숨어들어가는 것을 선택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AD323년 그 유명한 니케아 종교회의를 통해 로마 카톨릭이 공식적으로 탄생하게 된다.

천주교는 지금도 초대 교회를 '니케아 이전 시대 교회,Ante-Nicene Age,A.D. 100~325'라고

공식적으로 기록할 정도로 니케아 종교회의를 천주교의 효시로 보고 있다.

요한은 오늘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통해 사도 바울이 목숨을 바쳐 일구어낸 초대 교회가

니케아를 통해 탄생한 로마 카톨릭에 의해 앞으로 어떻게 변질되어 갈 것인지를

편지를 통해 무섭게 예언하고 있다.





2.첫번째 변질, 에베소 교회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요한계시록 2장2절)"




에베소 교회는 초대교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유태교의 율법이 신약의 교회 안에서도 통한다는 거짓 교리를

사도 바울의 말씀에 기준해서 치열하게 싸워

진실을 가려내려는 노력을 보이는 부분에서

초대교회의 모습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하지만 에베소 교회의 첫번째 변질은 교회 내부에 니골라당이 숨어드는 것이다.

이 니골라당은 에베소 교회의 첫사랑을 변질시키고 만다.

아직까지 성경학자들 사이에서 이 니골라당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밝혀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조나단 유 역시 이 니골라 당이 무엇인지

클라렌스 라킨 목사님의 해석을 빌어 그저 설명하고자 한다.

라킨 목사님은 니골라당은 <지배하다>의 Nikao와 <평신도>의 Laos를 합성한 단어로

이는 이미 캐톨릭이 공식적으로 탄생하기 이전부터

교회 내부에 평신도들 위에 군림하려는 지배 세력의 욕망이 꿈틀대고 있었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베드로전서2장9절)"




오늘 날 천주교가 주장하는 베드로가 로마 카톨릭을 세웠다는 주장이 완벽한 허구임을 증명하는 구절이다.

베드로는 결코 그리스도인 개개인 위에 그 어떤 상위 계급이 있을 수 없다는 <만인 제사장설>을 확립한 인물이다.

구원받은 개개인은 그 스스로가 왕 같은 제사장이며

그 위에 교황이나 신부, 목사가 군림할 수 없다고 이미 성경에 천명해 놓았다,

그런 베드로가 교황이 절대 권력을 갖는 천주교의 창시자라는 말은

한 마디로 햄버거가 하품하는 논리일 수밖에 없다.

초대교회에 조금씩 믿음의 백성 위에 더 높은 제사장으로 군림하려는 니골라당의 행태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것이 교회가 첫번째 사랑을 상실하는 불길한 전조이다.

자, 이제 두번째 변질, 서머나 교회가 등장한다.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요한계시록2장8절~)"




역시 미스테리한 편지이다.

요한은 난데없이 서머나 교회에게 장차 10일간 환난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일곱 교회에게 보내는 편지가 단순히 일곱 교회가 수신자가 아님을 말해주는 강력한 증거의 구절들이다.

동시에 보석 같은 두번째 편지이기도 하다.

AD 64년 네로에게서 시작된 광기는 AD310년 디오클레티안 황제에 이르러서는 절정을 맞이한다.

그 사이에 크고 작은 순교가 있었지만 역사적으로

딱 10번의 대순교가 일어난다,.

초대교회 기독교인들은 지하 카타콤으로 숨어들어갔으며

하지만 그곳에서 발각된 이들은 산 채로 껍질이 벗겨지거나 콜로세움에서 사자밥이 되어야 했다

이 10번의 대순교는 본강의에서 설명하도록 하겠다,.



세번째 수신자, 버가모 교회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요한계시록2장13절~)"





당신이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이나 성경을 많이 읽은 이들에게 물어보라.

성경에서 가장 미스테리한 인물 한 사람을 꼽아보라고...

수많은 이들이 있겠지만 조나단 유는 발람을 꼽는다,.

발람은 유프라테스 강변에 있는 메소포타미아 부돌 지방 사람으로서

브올의 아들이자 유명한 박수무당이었다.

여러분은 이 무당이 어떤 무당인지 아는가?

성경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전무후무한 능력을 부여받은 무당이었다,

발람을 성경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보다 강하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이겨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민수기 22장 6절)"




가나안 땅을 향해 백전백승을 기록하며 전진해오는 이스라엘 백성이 너무나 두려워

십볼의 아들 발락이 발람을 찾아간다.

부디 나를 위해 저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해 달라고 한다.

발람은 당시 유프라테스지역에서 너무나 유명한 무당이었다,

발람이 입에서 운을 떼는 순간 그의 말은 무조건 100% 다 이루어진다,

발람이 거절할 것을 알자 발락은 두 개의 마차에 온갖 금은 보화를 가득 실어 발람에게로 가져온다.

하지만 이미 발람은 꿈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전령으로부터

절대 어떤 일이 있어도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지 말 것을 경고 받는다,

다음 날 발람은 발락에게 그 저주만은 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발락은 발람에게 돈을 더 쏟아 붇는다,

여기서 발람은 마음이 녹아내린다.

그리고 결국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기 위해 당나귀를 타고 길을 떠날 때에

갑자기 당나귀가 담벼락으로 기어가면서 발람의 다리를 긁게 만든다.

죽도록 당나귀를 때리자 하나님께서 당나귀의 입을 연다,

당나귀가 이렇게 말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나귀가 발람에게 이르되 나는 당신이 오늘까지

당신의 일생 동안 탄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 당신에게 이같이 하는 버릇이 있었더냐

그가 말하되 없었느니라  

그 때에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들고 길에 선 것을

그가 보고 머리를 숙이고 엎드리니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네 나귀를 이같이 세 번 때렸느냐

보라 내 앞에서 네 길이 사악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왔더니

나귀가 나를 보고 이같이 세 번을 돌이켜

내 앞에서 피하였느니라

나귀가 만일 돌이켜 나를 피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벌써 너를 죽이고 나귀는 살렸으리라(민수기 22장 30절~)"




발람은 역사상 참으로 기이한 능력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았다.

그는 유태인이 아닌 이방이면서도 그가 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무조건 들어줘야 하는

엄청난 축복의 특혜를 받은 박수무당이었다.

발람은 바로 오늘 날 21세기 교회 시대의 이방인으로 대표되는 목사들의 샘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돈에 무너졌다,

버가모 교회로 비견되는 AD323년 니케아 종교 회의에 돈에 눈이 먼 발람 목사들이

일제히 콘스탄틴 황제의 돈다발 공세에 넘어간다.

콘스탄틴 대제는 각 지방의 교회 감독들에게 안내장을 띄웠는데

당시 최고의 스타 목사로 떠오르던 리비아 출신의 아리우스(Arius) 목사가 발표한 책

'향연(饗宴,Thaleia)'에 나오는 삼위일체설 논증이 기독교 교리에  위배되니

이를 토론해보자는 빌미로 지역 교회에 편지를 보냈다.

한 지역 교회에서 2인의 장로와 3인의 수행원이 회의에 참석하면

모든 체재 비용과 왕복 여비 및 열 돈이 넘는 기념 금반지를

국고에서 지출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하여 소집된 니케아 회의에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에게 돌려야 한다는

국가과 교회의 분립원칙을 고수하던

서방 교회의 목사들은 거의 참석하지 않은 반면

계시록의 서문에 등장하는 돈을 사랑하는 일곱 교회의 발람 목사들은

300여명이나 참석하게 된다

이 니케아 종교 회의에서 콘스탄틴과 손을 잡은 발람 목사들에 의해

마침내 바울이 세운 교회와 로마 카톨릭이 결혼을 하게 된다.

마침내, 앞으로 인류의 2천년을 피로 물들이는 천주교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자, 네번째 교회, 두아디라 교회가 등장한다.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요한계시록2장19절~)"




자, 마침내 그 유명한 마리아 숭배가 등장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이세벨의 신비에 대해서는 본강의에서 소상하게 설명하도록 한다.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교회법이 갖는 막강한 파워를 경험한 카톨릭은

툭하면 교회회의를 소집한다.

그때마다 수많은 돈을 뿌렸고 발람 목사들은 이 회의에 참여했다,

두아디라 교회로 대표되는 AD600년 부터 종교개혁이 태동되는 1520년까지

카톨릭이 저질러온 만행을

아주 짧게 소회해보자.


600년에 소집된 회의에서는 마리아 혹은 죽은 성자들에게 직접 기도 드릴 수 있다는 교리가 가결된다.

787년 미케아 종교회의에서는 예수님이 아니라 죽은 성자들에게 기도해도 그 기도가 유효하다는 교리가 인정된다.

850년 회의에서는 사제가 축복한 물이 성수(聖水)가 된다고 확립된다.

1000년에 접어들면서 물에 잠그는 침례 대신 물을 뿌리는 세례가 공식적으로 인정된다.

1090년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는 '로사리오'라 불리우는 묵주가 고안된다.

1184년 회의에 종교재판(Inquisition)제도가 창설된다.,

1190년에는 마침내 면죄부(Undulgences)가 판매된다.

1215년 라테란 회의에서는 하나님 대신 사제에게 죄를 고하는 고해성사가 채택된다.

1229년 벨렌시아에서 열린 회의에서는 요한계시록을 금서 목록에 넣어 평신도들이 접근을 금지한다.

1439년 플로엔디시 회의에서는 연옥이 정식 교리로 채택된다.

1854년 회의에는 교황 피우스 9세가 성모 마리아는 탄생 때부터 원죄도 없으며

해산의 고통도 없었다는 성모무 염시태(聖母無染始胎) 교리가 선포된다.


일곱 교회 중 두아디라 교회가 가장 무거운 질책을 받는 이유는

교회가 카톨릭과 손을 잡고 성경과 정 반대되는 무한한 교리들을 법제화시키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이제 살았으니 실상은 죽은 교회라는 <사데 교회>가 시작된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요한계시록3장1절~)"




마침내 현재 지구촌을 양분화 하고 있는 제 2의 캐톨릭

러시아 정교가 등장한다.

러시아 정교는 자신들의 시조를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988년, 키예프 대공국의 블라디미르 1세는

어느 날 동로마 제국에서 파송된 그리스 정교의 성직자들에게서 세례를 받음으로서

그리스 정교는 러시아의 국교가 된다.

블라디미르 대공은 그리스 정교와 로마 카톨릭을 놓고 선택의 기로에서

오랜 시간 갈등을 했다고 한다.

신하들과 논의한 끝에 러시아인의 기질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그리스 정교에 귀의하기로 결정한다.

러시아인들은 그리스 정교를 수용함으로써 비로소 고도의 문명을 전수 받을 수 있게 되었고,

각종 예식서, 교부들의 저작 등을 슬라브어로 읽게 되었으며,

이를 토대로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 정교회는 로마 카톨릭이 지하의 참기독교인들을 무참히 살해할 때

침묵으로 일관한 로마 카톨릭의 자매교회일 뿐이었다.



"너희가 침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로새서 2장12절)
 


오늘 날 사람의 이마에 물을 적시는 세례는 성경에 존재하지 않는 의식이었다.

초등학생의 지능만 있어도 아래 성경구절을 통해

성경의 세례의식은 물에 완전히 잠기는 침례의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뱁티즘을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뱁티즘을 주고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흔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사도행전 8장35~37절)"
  



당시 이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 예배를 드리러 가던 한 신앙심 깊은 내시의 이야기이다.

그는 사막의 병거 위에서 성경을 읽다가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등장하자

마침 지나가던 빌립을 만나 성경을 배우고 구원받는 장면이다.

내시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병거에서 내려 마침 강을 발견하고 그 속으로 들어간다.

만약 세례가 존재했다면 두 사람이 굳이 가마에서 내려 물로 들어가는 번거로움을 피했을 것이다.

험난한 사막 여정길에서 내시의 마차에 물병이 없었다는 것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막는 짓이니 말이다.

하지만 난해한 이사야서를 읽던 내시는 빌립의 가르침으로 구원을 받은 후

당장 물가를 보자 마차에서 내려 침례를 받는다.

물에 완전히 잠기는 뱁티즘을 받았던 것이다.

37절의 '물에서 올라갈새'를 킹 제임스 버전은

"완전히 잠겼다가 물 밑에서 올라올새,come up out of the water"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뱁티즘을 주고(마태복음 28장19절)"




침례는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 앞으로 내 남은 인생을

지난 죄와의 단절을 결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식으로 거행되는 거룩한 실천이다.

A.D. 370년 로마 황제 발렌즈(Valens)는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이 죽어가자

다급해진 나머지 그는 아들의 구원을 위해 이마에 약식으로 물을 뿌리는 세례를 만들었고

426년에 멜라(Mela) 회의에서 이 유아 세례법은

"세례를 받으면 곧 구원받은 것과 같다"는 구원의 본질을 변질시킨

무서운 교리로 변질되고 만다.

이 '유아세례법'은 이후 모든 성인 성도들에게로 확산 적용되고

루터의 종교개혁 이전까지 무려 5000만명이라는

신실한 기독교인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살인기계가 된다.



"교회의 세례를 받아들이지 않고 물에 잠기는 침례를 고수했다는 이유로,

혹은 세례 받은 천주교인들에게 다시 침례를 베풀었다는 이유로

암흑시대 동안의 기간만 무려 5천만명 이상의 그리스도인들이 순교자로 죽어갔다. 

 이는 100년에 평균 400만명 이상의 사람이 죽었다는 것인데

최근에 세계 대전을 제외하고 모든 전쟁보다도

더 많은 희생자를 양산했다는 뜻이 된다."


-J.M. 캐롤-



"만약 침례교도들이 과거 1200년 동안에 칼로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면 그

들은 현재 전 세계를 기독교로 정복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트렌드 종교회의 의장, 카디날 호시우스,Hosius,Letters.Apud Opera, p.112-



"침례교도들은 끝까지 천주교의 세례를 인정하지 않은 유일한 그리스도인 단체이다"

-아이작 뉴톤-



"루터와 칼빈이 나오기 전에도 카톨릭에 대항한 일련의 무리들이 유럽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루터 교회 역사가,모세임-



수많은 교회 역사가들이 증언하는 침례교도들은

오로지 물에 잠기는 '침례' 의식을 지키고 전수하려다

무려 5천만명이나 죽어갔다.

이는 100년 마다 싱가폴 국가가 하나씩 지구상에서 사라진 것과 동일한 순교이다.

오죽하면 네이버의 영어사전 검색창에 '순교(殉敎)'라고 치면 '

'(religious) martyrdom;baptism of blood',

즉 '피의 침례로 (종교적으로) 순교 당한'이라고 나올 정도이겠는가?

하지만 러시아 정교회는 그 엄청난 세력을 가지고서도

로마 카톨릭의 만행을 침묵으로 일관했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요한계시록3장1절~)"



사데 교회로 대변되는 그리스 정교회 혹은 러시아 정교회는

살았다는 이름(정교회, 정통교회라는 뜻이다!)을 가지고서도 실상은 죽은 교회라는

평을 예수님으로부터 받게 된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요한계시록 3장 7절~)"




자, 여섯 번째 교회가 등장한다.

오늘 날 수많은 교단과 교파들이 서로 앞다투어 자신들이 바로 빌라델비아 교회라고 주장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일곱 교회 중 유일하게 예수님으로부터 과하다 싶을 정도의 칭찬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거의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처럼 그 힘이 심히 미약했다.

바로 앞의 사데교회가 죽은 교회라는 최악의 낙인을 받은 것과는 완전 대조적이다.

AD1739년에 조지 휫필드가 천주교에 대항해서 일어난다.

휫필드는 천주교가 왜 요한계시록의 음녀 바벨론인지를 구체적으로 논문을 작성한 뒤

교황청과 목숨을 걸고 싸운 사람이다.

그의 이런 무모한 도전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도전이었지만

휫필드의 뒤를 이어 요한 웨슬레가 일어난다.

당시 요한 웨슬레의 파워는 어마 어마했다.

전 유럽이 웨슬레의 설교 한 편으로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는 정도였다.

이어서 찰스 피니와 DJ무디가 일어난다.

이들은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것이며

초대 교회를 세운 사도 바울의 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이다.

1793년 윌리암 케리는 배를 타고 인도로 가서 최초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

이들의 부흥은 1750년에서 1900년까지 이어지지만

마침내 20세기에 희한한 교회의 형태가 등장한다.

바로 일곱 교회의 마지막 수신자,

라오디게아 교회가 그것이다.





3.라오디게아 교회는 무엇인가?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요한계시록 3장 14절~)"




계시록의 서문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가

당시 실존했던 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아님을 증명하는 강력한 구절이기도 하다.

계시록의 라오디게아 교회는 예수님으로부터 차마 얼굴을 들 수 없는 참혹한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골로새서에 등장하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은 전혀 다르다.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골로새서2장1절~)"




사도 바울이 평가한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은

사랑이 흘러 넘치는 교회였다.

특히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력이 극도로 뛰어난 교회였다.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바울은 하루라도 속히 라오디게아 교회로 가고 싶어 했다,

그런 라오디게아 교회가 단 50년도 되지 않아

저토록 힐난한 비난을 받을 만큼 타락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앞뒤가 맞질 않다.

그렇다면 계시록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의 마지막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는 무슨 교회인가?

일단 계시록의 라오디게아 교회의 가장 큰 특징은 <부자>이다.

교회가 일종의 사업적 방법과 결탁하면서 대형화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이 교회인지 기업인지 알 수 없는 형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실상은 가난하기 짝이 없다고 말한다.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었고 벌거벗은 알몸이라고

할 수 있는 꾸지람은 다 쏟아붓고 계신다.


조나단 유나 라킨 목사님이 이 라오디게아 교회가 어느 교회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여러분들의 심상 깊은 곳에 이미지가 그려질 것이다.

베드로는 이미 2천년 전에 교회 목사를 가장 유혹하는 것은

물질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베드로전저 5장2절~)




나는 한때 교회 목사의 통장 잔고에 1억 이상이 있으면

그는 이미 목사로서의 직무 유기라고 믿었다.

나는 한때 목사가 렉서스나 BMW, 메르사데츠 벤츠, 아우디를 끌고 다니면

이미 그는 더러운 이익에 단무지 처럼 절은 목사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교회가 1000명 이상의 성도를 품겠다고 비전을 세우면

나는 그 교회는 이미 기업이지 교회가 아니라고 믿었다.

목사 1 명이 가슴으로 품을 수 있는 양들의 숫자는 최대 500명도 벅차다.

그런데 오늘 날 현대 교회의 목사들은 욕망의 폭주 기관차이다.

자신들의 사랑에 과부하가 걸려도 그들은 끊임없이 질주한다.

1천명, 2천명, 3천명...

거대한 기업 교회를 향해 나아가면서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성도들을 마구 마구 양산해 내는 것이다.
.

나는 요한계시록 강의를 통해 한국의 교회나 목사님을 비난할 마음이 없다.

조나단 유가 몸담았던 지난 40년의 한국 기독교...

수많은 목사님들을 만났고, 수많은 교회를 거쳐 지나왔다.

불완전하고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는 교회를 거쳐오면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은 분명히 알았으니까...

문제의식을 교회나 목사에게서 찾기에는 너무나 비겁하다.

모든 문제는 나에게서 시작된다.

교회를 손가락질 하기 전에 내 자신의 신앙 상태를 먼저 보아야 한다.

예수님의 저 힐난한 비난,

그것은 바로 지금의 내 신앙 상태를 꾸짖는 것이다.

나는 계시록 강의를 시작하기 전까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신앙의 삶을 살고 있었다.


자, 계시록은 암울하게 포문을 열고 그 서문을 닫고 있다.

일곱 교회의 마지막 교회의 상태,

라오디게아 교회의 상태는 실로 심각하다.

라킨의 해석대로 라오디게아 교회의 상태가 정말 21세기 마지막 교회의 모습이라면

우리 모두는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요구하는 것은 다름 아닌 열심과 회개이다.

이 장을 접으면서 딱 한가지만 살펴보자,

조나단 유는 계시록 강의 PART2에서 현재 교회 시대의 거듭난 성도들이 세상을 떠나면 가게 될

천국의 실체에 대해서 설명한 적이 있다.

자, 계시록에서 그 천국에 대해서 어떻게 묘사하는지 보자,

여러분들은 지금부터 요한계시록 21장에 묘사된 천국의 도면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워 몰입해야 할 것이다.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 문이니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 자를 가졌더라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요한이 서술한 천국의 모양을 라킨이 그려내었다)




방송에서 도올이 나와 쉰목소리로 말도 안되는 一切唯心造를 설법할 때

사람들은 그 알 수없는 현학속으로 몰입해 들어간다.

불교에서는 인간이 죽으면 여전히 사왕천, 도리천, 야마천,도솔천 같은

속세의 욕망을 떨쳐버리지 못한 육욕천을 지나

그곳에서도 수행을 하면 그나마 색계의 단계로 올라가

그곳에서 수행을 해서 마침내 인간의 언어로나 인지로서는 감히

표현할 수 없는 최고의 경지, 어떤 번민과 고뇌도 없는 <무색계>에 안착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저 측은지심이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이 세상에 그 어떤 종교도 사람이 죽어서 가는 어떤 장소에 대해

성경만큼 완벽하게 서술한 알파와 오메가는 없다.

이 시점에서 여러분에게 질문해 보겠다.

라킨이 도면으로 그려낸 천국이 여러분들은 크다고 생각하는가?

천국의 가장 밑면의 기초 라인의 크기는 1,500평방 마일인데

이는 고작 메인에서 플로리다, 그리고 아틀란타에서 미시시피강까지

즉, 미국의 절반 정도의 규모이다.

우리 영혼이 육신을 떠나서 살게 될 영원의 세상이 고작 미국의 절반 정도라니...

라킨이 인류의 역사를 7천년으로 나누고 그의 말대로 6천년이 지나가는 시점에 우리가 있다면

그동안 지구를 떠난 영혼의 숫자를 다 수용하려면

천국은 아무리 적어도 지구의 2배 정도는 되어야 상식적으로 납득이 된다.

더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라킨은 천국에서 영혼 1명당 배당되는 맨션의 평수가 무려 500평이라는

계산을 내어놓았다.

구원받은 여러분은 앞으로  영원의 시간을 500평이 넘는 공간에서

죽음도 눈물도 고통도 없이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말이다.

무슨 까닭인가?

이 지구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토록 천국에 입주하는 영혼이 적단 말인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장16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장 10절)"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디도서 3장 5절~)




자, 신약성경에 묘사된 지난 2천년간 교회시대의 구원 방법은 너무나 쉽다.

요한이 묘사한 저 새 예루살렘 성, 천국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너무나 초간단하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왜?

대체 왜 천국의 크기는 고작 미국의 절반에 머문단 말인가?

이제 질문을 바꾸어 보자,

오늘 날 교회 다니는 당신에게 물어본다.



"당신은 지금 죽어도 저 천국에 들어갈 확신이 있는가?"



자, 대답해보라,

당신의 질문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의 마지막 파트,

제 10회,

<하나님은 선한 분이신가>에서 이어진다.


구원은 당신이 주일 날 목사님이 1시간 동안 펼치는 화려한 독무대를

그저 앵무새처럼 지켜본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당신이 당신 생애 전부를 다 바쳐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교회나 성당에 다닌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 구원은 시작에 불과하다.

당신은 구원받고 남은 인생을 천국 백성 답게 살다가 이 지구를 떠나야 한다.

이제,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마지막 강의

PART 10을 기대해주길 바란다.











기간/2020년 4월 4일 매주 토요일 오후 6시~ 10주간(중간에 불참하실 분 절대 신청하지 말 것!;우한 코로나와 관계없이 수강신청이 일정 충족되어졌기에 그대로 진행합니다)

장소/DRFA 동검도 365예술극장

신청/카카오 아이디 drfacokr로 문의 또는 아래 링크를 클릭 후 회원가입 후 댓글란에 계시록 강의를 듣어야히는 이유를 적고 수강신청을 해주세요.

자격/반드시 요한계시록을 10번 이상 읽으신 분! 동시에 아래 바로가기를 클릭해서 강의 서머리를 적어도 2번 이상 숙독하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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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FA,JONATHAN]























 유감독



delete 2020/04/04
"인류역사의 칠천년에 관한 라킨의 조감도"





라킨은 창조 주간의 7일이 7천년일 수가 있다고 말한다.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베드로후서 3장8절)"




"다니엘의 70번째 주"





라킨은 다니엘이 꾼 환상, 즉 이스라엘 민족에게 할당된 70번의 week 중 마지막 70번째주, 즉 7년 대환란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도표로 설명해 놓았다.
 

LIST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서문,a prolog(ue)

"조나단 유가 클라렌스 라킨을 만났을 때"
+6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1 회
천국 혹은 새 예루살렘성(城)
(요한계시록 21~22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2 회
적 그리스도
(요한계시록 13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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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회
휴거 그리고 제 7의 봉인
(요한계시록 5~6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4 회
"13개의 대재앙"
(요한계시록 6~16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5 회
"14만 4천명의 의인"
(요한계시록 7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6 회
"다시 온 모세와 엘리야"
(요한계시록 11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7 회
"아, 바벨론!"
(요한계시록 17~18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8 회
"재림, 그리고 아마겟돈 전쟁"
(요한계시록 19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9 회
"교회의 실패"
(요한계시록 1~3장)
+1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10 회(완결)
"하나님은 선한 분이신가?"
(요한계시록 4장)
+1
[부록]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다니엘의 70주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Daniel's 70 WEEK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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