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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10 회(완결)
"하나님은 선한 분이신가?"
(요한계시록 4장)




2019/12/22 유감독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10 회
"하나님은 선한 분이신가?"
(요한계시록  4장)




1.하나님에 대한 오해



오늘 날 대한민국에는 한때의 기독교인들이 차고 넘친다.

그들은 한때 누구보다 아름다웠던 순수의 눈망울로 예수님을 사랑했지만

어느새인가 그들은 첫사랑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지금은 교회를 <개독교>라고 부르며 이빨을 가는 증오의 객체가 되어 있다.

오늘 날 그들의 SNS에는 교회를 향한 증오의 글들이 차고 넘친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히브리서 6장 5절~)"




죄사함을 한 번 맛본 자들의 타락은

되돌리기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히브리서 기자의 말이다.

피터 러크만 박사는 위의 구절을 결코 구원 받은 자에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며

환란 성도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이상한 비유를 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 속에서 오늘도 많은 형제 자매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버리고 철저하게 불신자의 상태로 돌아거거나

아니면 S교단의 이상한 구원론으로 빠져버리거나

아니면 여호와 증인, 몰몬교, 이도 저도 아니면 천주교로 떠나버린다.


조나단 유는 앞의 PART9에서 교회 다니는 이들 중에

왜 천국에 입성하는 영혼들이 이토록 적은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당신은 지금 죽어도 천국에 갈 확신이 있습니까?>라는 질문도 같이 했다.

지금부터 나는 그 해답으로 여러분들을 인도할 것이다.

부디 귀를 열고 나의 말에 열린 마음으로 들여다보길 바란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충분히 고민하고 묵상한 이들이 지극히 적다는 데서 교회의 비극이 시작된다.

안타깝게도 하나님을 인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성경을 읽는 방법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브리서 4장 12절~)"





사람들은 치매에 걸리지 않는 방법을 찾아 부단히 노력한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성경을 자신의 나이 수 만큼 읽은 이들에게는 결코 치매가 찾아올 수 없다고...

성경 말씀이 진리라면 성경은  날이 시퍼렇게 선 명검이라고 말하고 있다.

성경 말씀은 혼과 영과 관절만 쪼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뼈마디 하나 하나를 조각내어 재조립한다고 적혀 있다.

조나단 유는 히브리서의 저 말씀을 완벽하게 경험한 사람으로서

여러분에게 치매에 걸리지 않는 유일한 방법으로 성경읽기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여러분이 성경을 읽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

주일 날, 목사님의 설교?

천만 만만의 말씀이다.

나는 40 평생을 주일 예배를 한 번도 빠트리지 않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만나보았다.

하지만 그들과 구원과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그들은 하나같이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해댄다,

자신이 하나님을 만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목사의 하나님을 이야기 한다.

그렇게 된 데에는 성도들이 스스로 성경읽기로 인도하지 못한 목자의 잘못이 가장 크다.

조나단 유는 누누히 말하지만 성경을 읽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의 진짜 마음을 읽어낼 수 없다.


PART 10의 제목을 <하나님은 선한 분이신가?>로 지어놓고

사실 이 명제에 접근하기란 이 짧은 페이지로서는 감히 턱도 없이 불가능함을 고백한다.

하지만 나는 앞의 계시록 강의 PART1~9를 강의하면서

<7년 대환란>이 끝나갈 무렵 지구의 인구는 99%가 소멸된 절망의 땅임을 아주 소상하게 설명했다.

계시록에는 하나의 재앙이 휩쓸고 지나갈 때마다 지구인들이 보여주는 공통적인 습성이 묘사되고 있다.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요한계시록 9장20절)"





즉, 인간에게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찾는 마음 자체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대재앙이 지구에 쏟아져내려도 인간들은 하나님보다는 마귀를 먼저 찾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가 하나 있는데

그는 마귀라고 정의를 내리신 것이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요한복음 8장 44절)"




성경에서 가장 끔찍한 말씀이다.

우리 인간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클라렌스 라킨은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보좌의 구조를 따서 만들어졌는데 육과 혼과 영의 구조로 되어 있다고 한다)




사도 바울 이전에 성경의 예언가들은 모두 인간을 영혼과 육의 이원론적인 구조로만 이해했다.

하지만 인간이 <영>과 <혼>과 <육>의 삼중 구조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최초로 밝혀낸 이는 사도 바울이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데살로니가전서 5장23절)"




조나단 유는 클라렌스 라킨이 위대한 예언가이자 천재였다는 점을 추켜세우는데

무척 자제하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라킨의 책을 읽으면 모골이 송연해 지는 때는 바로 이럴 때이다.

라킨은 인간을 계란으로 비유하자면,

육신은 계란의 껍질부분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안의 내용물과 껍질 사이에 투명한 피막이 있는데

라킨은 그것이 <혼>이라고 말한다.


나는 어느 날 꿈을 꾸었다.

일평생 꿈을 꾸었지만 죽음 후의 경험을 그토록 리얼하게 체험한 꿈은 그날 그 꿈이 유일하다.

내가 죽었는데 나는 육체로부터 이탈되었다.

무슨 까닭인지 나는 가장 먼저 거울로 다가갔다.

하지만 거울에는 내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부터 내 눈에는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거울에 내 육체가 보이지 않는다는,

혼의 상태를 경험한다는 것이 그토록 공허한 것인지 몰랐다.

방 저쪽에서는 그래도 나를 위해 슬피 울어주는 사람들은 육신의 누님들이었다.

우리의 이 <혼>은 수집된다.

마귀이든, 천사이든 우리의 혼은 반드시 수집된다.

그것은 잠시 후에 다루도록 하겠다.


라킨은 계란의 가장 가운데 <노란 자위>가 있는데 그곳이 바로 <지성소>라고 했다.

나는 라킨의 이 해석에서 정말 많은 부분이 깨어졌다.

지구에서 육신을 갖고 사는 모든 인간들은 육신 어느 한 가운데 <지성소>가 있다.

원래 아담의 지성소에는 하나님께서 지구에 오셨을 때마다 머무는 곳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하지 말아야 할 <내기>를 하고 만다.

그것도 <7년 대환란> 기간 동안 전 지구를 휘어잡는 희대의 사기꾼 루시퍼와 말이다.

그 내기는 단순하다.



"하나님, 대체 저 인간 하나를 만들어 놓고

뭐가 그렇게 행복하다고 매일 입가에 미소를 짓고 계십니까?

아담이 하나님을 죽으나 사나 사랑하는 것이

아담 스스로의 자유의지라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혹시 아담의 자유의지를 하나님께서 조종하는 것이 아닌지

제가 어떻게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루시퍼의 이 간사한 말을 하나님께서는 그냥 묵살 하셔야 했다,

하나님의 가장 큰 특징 하나가 지나치게 인간에게 집착하신다는 것이다.

그것은 욥기 1장에 극명하게 나타난다.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욥기 1장6절~)"




앞으로 이 지구에 올 적그리스도는 어마 어마한 언어의 달변가이자 마술사이다.

그가 선택하는 단어의 기름짐을 보라,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루시퍼는 하나님을 자극하는 가장 쉬운 법을 알고 있는 피조물이다.

그것은 인간을 들이밀면 된다.

하나님은 인간의 피사체 앞에서는 꼼짝없이 걸려드시는 분이시다.

욥이 어떤 결말로 사탄의 올무를 빠져나오게 되었는지는 여러분들 스스로가 욥기를 읽으면서 해답을 찾기 바란다.

욥은 전 재산과 모든 자식을 하루 아침에 잃고 나병 환자가 되어

결코 빠져나올 수 없었던 사탄의 시련 속에서

오로지 하나님 한 분을 죽을 듯이 묵상함으로써 올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묵상 끝에 욥이 내린 결론은 딱 한 가지이다.


"하나님은 그럴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나의 이 고통을 즐기시는 새디스트가 결코 아니시다.

그 분이 나를 구원하러 오신다"


자, 다시 앞으로 돌아가보자,

아담의 <지성소>를 두고 인류 역사상 가장 무섭고 두려운 내기가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서 시작된다.

인간에게 과연 <자유의지>란 어떤 질량과 어떤 사유의 유기체와

어떤 판단의 원소와 어떤 철학의 응집으로 조합되어 있는지를

알아보는 대시험대가 열린 것이다.

그 날은 온 우주가 침묵하는 날이었으며

하늘의 천군 천사도 침묵하는 날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너무나 참혹했다,

하와는 너무도 쉽게 뱀의 유혹에 넘어갔으며

아담은 너무도 쉽게 하와의 명령에 순종했다.

하나님의 완패이시다.

인간의 자유의지에 걸었던 하나님의 일말의 기대는 처참하게 무너져 버린 것이다.

그 결과 하나님이 계셔야 했던 아담 속의 <지성소>는 이제 사탄이 또아리를 트는 장소로 변해버렸다.

동시에 하나님에게는 사탄에게 빼앗인 인간을 되찾아와야만 하는 숙명의 대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요한복음 8 8장 44절)"




자, 이제 예수님께서 구원받지 못한 인간을 향해

사탄의 자식이라고 한 말의 뜻을 알겠는가?

속지 마라...

낡은 가방 하나를 품에 안고 배를 타고 먼 홀로 된 섬에

글자를 모르는 아이들에게 글자를 가르치러 가는 고독하고 경건한 선생님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면 그의 지성소에는 사탄이 자리잡고 있다.

도덕도, 선행도, 그 어떤 자신을 불사르는 희생의 행위로도

사탄을 지성소에서 내어쫒지 못한다.

바로 그것이 <구원받지 못한 자>의 상태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이후,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사탄으로부터 다시 되찾아 오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셨다.

하지만 하나님은 늘 실패하신다.

바로 인간의 <자유의지> 앞에서 말이다.

내가 하나님의 실패라는 단어를 쓸 때마다 수많은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 발끈한다.

어떻게 감히 그런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느냐고?

하지만 당신에게 묻는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세기 6장 5절~)"




수많은 성경학자들은 위의 <한탄>과 <근심>을 히브리어 원단어를 들먹이며

하나님의 저 심정은 결코 우리 인간이 인지하는

한탄과 근심이 아니라고 사람들을 설득시켜 왔다.

하지만 감히 조나단 유는 말한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위대성에서 잠시 눈을 돌려

하나님이 실존하는 나의 육신의 아버지와 같은 성정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당신의 신앙과 믿음은 영원히 답보 상태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고 말이다.

하나님은 인간 앞에서는 육신의 아버지처럼 똑 같이 한탄하시고 근심하시는 분이시다.

더 솔직히 말한다면 <지성소>를 루시퍼에게 빼앗긴 다음부터

사실은 하나님은 승산없는 싸움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지성소>에 사탄이 들어온 순간 인간들은 근본적으로 악하다.

노아의 때를 보라,

노아는 120년간 방주를 건축하면서 수시로 도시로 나가

사람들에게 <비가 올 것이다>라고 외쳤다.

하지만 결과를 보라,

방주를 통해 구원받은 사람들은 고작 노아의 가족 뿐이다.

마찬가지이다,

조나단 유가 앞으로 이 지구에 <7년 대환란>이 올 것이라고 외쳐도

믿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이다.

라킨의 세대주의를 비웃는 목사들로 한국 교회는 차고 넘친다.


하나님은 인간의 <지성소>를 다시 되찾아오는 방법을

그 시대마다 참으로 다양하게 시도하셨다.

모세  이전에는 인간의 양심으로 무게추를 달아 재어보셨지만

그 무게를 지탱하는 인간이 아주 극소수임을 알고는

아브라함이라는 한 남자를 선택하셨다,

그리고 그를 통해 태어나는 자손들을 세상의 이방인들을 천국으로 데리고오는

선별된 민족으로 만들려고 하셨다.

그때 사용된 것이 바로 율법과 성막이었다.

인간들은 율법을 어기면 그에 할당된 속죄 제물을 가지고 성막의 <지성소>로 나가가야 했다.

이 모세의 장막은 다윗에 이르러 거대한 황금빛 성전으로 변했지만

이 성전은 되려 이스라엘 백성들을 완전히 멸망시키는 매개체가 되고 말았다.

성전이 고급스러워 지면서 제사장의 직무는 특권이 되었고

그 성전 안에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온갖 음란한 행위들이 난무하게 된 것이다.

오늘 날 교회 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간과하는 단 한가지 사실이 있다.

사람들은 다윗의 성전이 AD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

돌 하나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파괴된 이후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2020년까지 재건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 잊고 있다.

이 논지 속에는 성경의 가장 핵심 비밀이 숨어 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린도전서 3장 16절)"




조나단 유는 PART9에서 당신에게 물었다,

<당신은 지금 죽어도 천국 갈 자신이 있습니까?>

자, 그 해답이 바로 고린도 전서 3장 16절에 있다.

당신이 성경의 66권 전부를 잊어버리더라도 딱 한 구절 바로 고린도 전서 3장 16절만 부여잡으면 된다,

루시퍼에게 빼앗겼던 <지성소>에 누가 들어와 있다고?

<하나님의 성령>이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성령을 어떻게 <지성소>로 초대하는가?

그때 사용되어지는 것 역시 당신이 가지고 있는 <자유의지>이다.

인간의 자유 의지는 이토록 어마 어마한 특권을 가진 존재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사회주의자가 되면 안된다.

당신이 이 땅에서 절대로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을 수 없는 첫번째 요건이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로마서10장9절)"




자, 이제 당신은 오늘부터 앞의 두 구절,

고린도 전서의 말씀과 로마서 말씀 두 구절을 가지고

당신의 <지성소>에 있는 사탄을 쫓아내고 성령님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구원이다!

쉽지 않을 것이다.

사탄은 어떡하든 지성소에서 쫓겨나지 않으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방해공작을 펼칠 것이다.

조나단 유는 여기까지만 말하겠다.

이제 남은 해답의 여정은 당신 스스로가 찾아야만 한다.


당신의 지성소에 하나님의 성령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당신의 남은 인생 1년 365일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렇다고 고통이 없어진다는 말이 아니다.

삶의 가치관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이제 무엇을 향해 살아야 하며

나를 기다리는 영원한 도성, 천국을 향한 설레임으로

당신은 매일 매순간이 행복의 도가니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2.성령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율법의 시대가 끝이 났듯이

이제 조만간 성령의 시대도 끝이 난다.

지금은 누구나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지성소>에 있는 사탄을 몰아낼 수 있다.




(라킨은 각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는 복음은 다르다고 구분하고 있다)




위의 클라렌스 라킨이 그린 도표를 유심히 보아주길 바란다.

숫자 1의 시간은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자신이 직접 통치하는 왕정을 이스라엘의 엘 아크 고원에 위치한

다윗이 준비하고 솔로몬이 완성한 성전에 완성시키려는 특별한 기간이었다.

(현재 다윗의 성전은 이슬람교도들에게 빼앗겼으며 이슬람교도들이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늘 그렇듯 하나님의 계획은 아담과 이브 이후로

인간들의 변심 때문에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예수님의 왕정수립의 계획도 마찬가지 였다.

유태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이 꿈꾸고 기다렸던 메시야와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직업은 목공소 직원, 이상한 누더기 옷을 입고 광야를 헤매며

당시 최고의 미천한 이들을 제자로 삼고 다니며

왕국 복움을 전했다.

자신이 수립할 왕국의 절대 복음은 두가지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

4복음서를 한번이라도 읽은 여러분들은 이상하지 않는가?

예수님께서 다윗의 성전에 들어갔을 때

왜 그동안 한번도 하지 않았던 행동을 하셨던 것일까?

그토록 인자했던 예수님께서 채찍을 휘두르며 상인들의 리어카를 뒤엎은 것이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마태복음21장 12절)"




예수님에게 있어 이 다윗의 성전은 너무도 중요한 장소셨다.

하지만 인간들에게 그 장소의 소중함을 깨닫기에는 지식과 지혜가 없었다.

인간들은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

인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버렸다.

그리고 예수님의 예루살렘 왕정수립은 2천년 뒤로 유보된다.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한복음 16장 7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날 밤,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엄청난 말씀을 하신다.

성경 66권을 통털어 가장 중요한 말이며

인류의 99%가 놓치고 있는 말이다.

자신이 셋째 하늘로 간 다음에 누군가가 이 지구에 온다는 말이다.

그는 바로 <보혜사>라는 분이시다.

성경 전체를 통털어 <보혜사>야 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놀라운 파워를 가진 분이시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셋째 하늘 자신의 보좌에서

온 우주와 지구를 컨트롤하는 태생적으로 한시적인 조건을 가지신 분이시다.

그 분이 지구에 올 때는 아주 극소수, 천사의 현현으로 오셨다.

인간이 선악과를 선택한 이후로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인간은 함께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실 때 수십차례에 걸쳐 경고하는 대목에서도

우리는 그 상태를 읽을 수 있다.


"나를 보려고 산에 가까이 오지 마라, 급속히 너희를 죽일 수 있다"


선악과 이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어떤 태생적인 한계점이 생긴 것이다.


다음은 예수님,

예수님은 이 지구에 고작 33년을 머물다 가셨다.

그리고 그 분은 이후 이어지는 2천년간 셋째 하늘로 돌아가서

앞으로 우리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살 <천국>을 건축하고 계신다.


"가서 너희를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한복음14장 3절)"



예수님은 지금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며 라킨이 그렸던 그 천국의 막바지 작업에 몰두하고 계신다.




(요한이 21장에 자신이 본 천국의 모습을 서술했고 라킨이 도면으로 그려낸다)



가련한 천주교인들이여...

카톨릭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천국에 가는 이들은 아주 극소수,

대부분 연옥이라는 중간 지점에 가서 대기하다가

살아 있는 후손들의 간절한 행위와 기도에 의해 천국으로 옮겨진다고 가르친다,.


가련한 불교신자들이여,

불교에서는 인간이 죽으면 여전히 사왕천, 도리천, 야마천,도솔천 같은

아직 속세의 욕망을 떨쳐버리지 못한 육욕천을 지나

그곳에서도 수행을 하면 그나마 색계의 단계로 올라가

그곳에서 수행을 해서 마침내 인간의 언어로나 인지로서는 감히

표현할 수 없는 최고의 경지, 어떤 번민과 고뇌도 없는 <무색계>에 안착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여호와 증인과, 몰몬교,제7안식일 교회

인간이 죽으면 혼은 땅 속에서 소멸되며

죽도록 전도한 14만 4천명의 선택받은 자들만

천년 왕국으로 들어간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억하라!

천년왕국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가는 곳이 아니다!

그곳은 지금 구원 받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교회를 다니던 이들이

뒤늦게 지구에 남아 죽을 고생을 다하고 7년 대환란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들어가는 곳이다.


현재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누룩 S교단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목표는 죽어라고 고생하고 헌신한 댓가로

바로 저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인 사람들이다.


가련한 이슬람교 교도들은

유태인들과 마찬가지로 구약의 수많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는다고 믿는 이들이다.

이들은 여전히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이 지구상에서 복수의 혈전을 저지르는 이들이다.


오늘 날, 장로교와 감리교, 순복음교회가 장악한 한국의 교회...

측은하게도 이들은 90%의 교회들이 성도들이 <7년대환란>을 통과할 것이라고 가르치거나

아예 <7년대환란> 따위는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조나단 유가 앞에서 누누히 밝혔지만 이들의 모체는 어쨌든 카톨릭이며

위대한 신앙의 대가 캘빈과 웨슬레가 캐톨릭으로부터 목숨을 걸고 떨어져나올 때

신학적 기반을 미처 다 마련하지 못하고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약 성경은 예수님 다음으로 지구에 한 분이 오셨는데

그 분의 이름은 <보혜사>, 즉 우리가 성령님이라고 부르는 분이시다.

<보혜사>란 이름의 뜻은 <무한한 은혜>!

그 분은 한계치가 없는 어떤 무한한 은혜로 상실된 영혼을 채집하고 계신다.

조건은 초간단하다.

당신이 아무런 조건이나 대가 없이 당신의 지성소로 보혜사를 받아들이면 된다.

성경에서는 인간이 죽으면 가는 곳은 딱 두 가지밖에 없다고 가르친다.

라킨이 도면으로 그려낸,

현재 예수님께서 1분 1초도 쉬지 않고 짓고 있는 천국 아니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중심 어느 한 시공간이 뒤틀리는 지점에 위치한 <지옥>밖에 없다.

당신이 보혜사를 당신의 지성소로 모셔들이는 순간

그 보혜사는 이제 조만간 자신이 지구를 떠나면서 당신도

같이 데리고 셋째 하늘로 올라간다.

바울은 그것을 휴거라고 말한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데살로니가전서 4장16~17절)"








3.지성소를 회복하지 못한 이들은 어디로 가는가?




(여러분들은 이 도표를 반드시 머리 속에 각인시켜야 한다.  라킨은 모든 인간의 최종 목표지는 바로 J로 표시되는 <새예루살렘>성이어햐 한다고 말하고 있다)



클라렌스 라킨과 아이슈타인은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다.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자 중에 처음으로 뉴턴의 만류인력 법칙을 이용해서

우리가 사는 지구의 중심에는 중력을 만들어내는 엄청난 질량의 공간,

즉 블랙홀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설을 만들어낸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블랙홀의  존재를 공상과학 만화에 나오는 허구라고 단정하며 세상을 떠났다.

이후 수많은 물리학자들이 블랙홀의 존재에 도전해왔다.

그러다 지구로부터 14000광년 떨어진 백조자리의 X-1이란 물체를 촬영하는데 성공하고

영화 ‘인터스텔라’ 제작에 자문역으로 참여하기도 했던 킵 손은

이 백조자리 X-1가 시공간을 왜곡시키는 블랙 홀이라고 주장했다.

한때 킵 손과 스티븐 호킹은 이 백조자리 X-1을 두고 블랙홀이냐 아니냐는 내기를 하기도 했다.

결국 킵 손이  중력파 검출로 블랙홀의 존재를 입증하면서 노벨물리학상을 받게 되고

스티븐 호킹은 깨끗하게 패배를 인증하기도 했다.

아이슈타인이 우리가 사는 지구 중심에 블랙홀이 있을 수 있다는 논리는 단순했다.

그것은 <중력>에서 시작된다.

당신이 사과를 던지든 유현진이 시속150km로 야구공을 던지든

그것은 한순간 직선으로 날아가는 듯이 보이지만 누군가 잡지 않으면

사과와 야구공은 포물선의 모양으로 떨어진다.

이유는 지구 한 가운데 중력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떨어지는 야구공을 받쳐줄 지구의 껍데기가 없다고 가정하고

야구공이 계속 아래로 떨어진다고 가정해보자.

야구공은 엄청난 중력의 가운데를 통과하면 국수가락으로 늘어져버리게 된다.

그 늘어지는 공간을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지구의 핵이라고 불렀고

아인슈타인은 그 공간은 시공간을 외곡시키는 <텅 빈 공간>

즉, 블랙홀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아이슈타인은 어디까지 가능한 이론일 뿐이지

허구일 가능성이 많다고 결론을 내렸다,

자, 아이슈타인과 동시대에 살았던 클라렌스 라킨 목사님은

아이슈타인 보다 더 강력한 <블랙홀> 이론을 펼쳤다.

그의 또 다른 단편 <대피라미드의 비밀>편을 읽어보면 클라렌스 라킨이 얼마나 위대한 과학자이자

물리학자임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언제 소개할 기회가 있으면 꼭 소개하고 싶다.

클라렌스 라킨은 우리가 사는 지구의 중심에는 죽은 영혼을 소집하는 두 개의 뒤틀린 공간이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예수님의 설교 중에도 등장한다.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누가복음16장24절)"




여호와 증인의 모든 교리를 만든 러셀은 누가복음의 16장의 이 예수님 설교를 비유라고 가르쳤다.

그래서 지옥은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의 혼은 땅으로 내려가 소멸된다고 가르쳤다.

여러분이 현재 여호와 증인을 만나보라.

백이면 백 다 가장 먼저 이 구절을 들고 이 구절은 비유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예수님의 설교 중 비유는 반드시 비유라고 서두에서 밝히며 시작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나사로>라는 실명을 집어넣을 때는 그것은 실제 있었던 사건을 이야기 한다.

지옥에 간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너무나 갈증이 나니

나사로의 손가락 끝에 물한방울만 찍어 내 혀를 적셔달라고 말한다.

그떄 아브라함이 흥미로운 말을 한다.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이곳에서 그곳으로 갈 수 없다"고 말한다.


흠정역의 창시자, 영국의 제임스 왕은 왜곡된 성경을 다시 번역하기 위해

당대 최고의 고대 언어 연구가 70인을 소집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 비유에 등장하는 <구렁텅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수없이 많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다.

그들은 몇 날 며칠을 고민을 하다가 결국 이 구렁텅이를 'GULF'라는 단어로 번역하기 이른다.

위의 라킨의 도표 중에 K부분을 보라,

GULF의 사전적 의미를 네이버에서 찾아보자,

"소용돌이; 지표(地表)의 깊은 구멍, 깊이 갈라진 틈,심연(深淵)"

정확하게 부자와 나사로 사이에는 GULF가  있었다.

아브라함은 부자에게 너와 우리 사이에는 GULF가 있어 왕래할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사는 이 지구 속 어딘가에는 블랙홀이 존재한다.

그 블랙홀을 사이에 두고 P와 H의 공간이 있었다.

P에는 나사로가 살았고 H에는 부자가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운명하시던 날, 자신 곁의 강도에게 말씀하신다.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예수님의 운명과 함께 수많은 무덤이 갈라졌고

예수님은 나사로가 있는 지하 P의 장소로 내려 가셨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요한복음20장 16절)"




클라렌스 라킨 외에 역사상 그 어떤 신학자도 해석하지 못한 부분이다.

해석은 고사하고 위의 구절에서 의문점도 캐치해내지 못한 신학자들이 대부분이다.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신 예수님께서 3일 뒤 마리아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 중에 참으로 희한한 말씀이 포함되어 있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사람들은 흔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곧장 하나님의 보좌로 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3일 동안 어딘가에 가셨다,

과연 예수님께서는 어디에 계셨단 말인가?

라킨은 예수님께서 이 3일 동안 P에 있던 자신의 백성들을

E로 옮기는 작업을 하셨다고 말한다.

라킨의 저 논리가 맞다면 예수님께서는 늘 우리의 처소를 예비하시는 분이신 것이다.

앞서 바울이 말했지만 우리는 죽어도 끝이 아니다.

<육>은 사라지지만 <혼>와 <영>이 영원이 거주해야 할 곳이 필요한 존재로 변한다.

예수님은 구원받을 자들을 P에서 E로 옮기셨고

현재는 E의 공간에 있는 성도들을 최종적으로 J의 공간으로 옮기기 위해

공사 막바지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시고 계신다.

믿지 못하겠는가?

성경 다니엘서에 무시무시한 말이 등장한다.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그런데 바사 왕국의 군주가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 왕국의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 주므로  

이제 내가 마지막 날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이는 이 환상이 오랜 후의 일임이라 하더라(다니엘서10장 12절~)"




누누히 말했지만 <요한계시록>은 바로 이때 다니엘이 천사에게 들었던 말을 기록한 책이다.

그 책은 <사람들이 빨리 왕래할 때까지> 7개의 봉인으로 봉인된 책이었다,

이 말은 바꾸어 말하면 계시록은 2000년 정도에 봉인이 풀릴 책이었지만

요한의 열정으로 2000년 앞당겨 봉인이 풀어졌다.

자, 여기서 흥미로운 묘사가 등장한다.

다니엘이 미친 듯이 자신의 동족, 유태인의 운명에 대해 알려달라고 기도할 때

한 천사가 다니엘이 기도를 드린 첫 날부터 응답해주기 위해 셋째 하늘을 출발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천사는 바사 왕국의 군주에게 20일간 가로 막혀 있었다.

사탄의 군대도 총 동원해서 <계시록>이 인간에게 읽혀지는 것을 막아야만 했던 것이다.

엄청난 파워를 가진 천사였지만 바사의 군주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미 여러분은 이 바사의 군주가 인간의 군주가 아님을 눈치챘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눈치 채야 한다.

아니, 가슴 깊이 깨달아야 한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시험판에 올리고 인간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던 하나님,

인간의 배반으로부터 하나님은 그때부터 혹독한 댓가를 치뤄야만 하셨다.

하나님은 오늘도 사탄과 집요하게 투쟁하면서 어떡하든 인간에게

영의 세계에 대해 알려주고자 애쓰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오랜 병상에 누워있던 사람들이 <죽으면 훨훨 구천을 날아가리라>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니엘서에 묘사된 인간의 운명은 슬프다 못해 참혹하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에베소서2장1절)"




공중에 누군가가 있다.

이 지구의 대기권을 빼곡히 둘러싼 그 누군가가 있다.

바울은 그들을 공중의 권세 잡은 자라고 표현하고

다니엘은 바사의 군주들이라고 표현했다,

라킨은 그들을 인간이 죽으면 인간의 영혼을 채집하는 사탄의 사냥꾼이라고 말했다.

라킨은 단 한 영혼도 지구를 빠져나갈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살아서 <지성소>에 성령을 모셔들이지 않은 영혼들을 단 한 명이라도 채집해서

H라고 불리우는 지구의 블랙홀로 데리고 가버린다.



"그들에게 왕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어로는

그 이름이 아바돈이요 헬라어로는 그 이름이 아볼루온이더라(요한계시록9장11절)"



지옥에도 대통령이 있다.

그의 이름은 아바돈이다.

이 대통령은 적그리스도와는 전혀 다르다.

적그리스도는 포획되어 천년 동안 자신만의 단독 감옥에 갖힌다.

인간이 지구를 떠나면 지구에는 15일 내에 사망신고서를 동사무소에 제출해야 하고

이제 지옥에서는 전입신고를 해야 한다.

이곳의 대통령 아바돈은 단 한 영혼도 놓치지 않는다.

완벽한 전입 신고와 통제 체계로 가두어버린다.

하지만 여러분이여,

그나마 지구 속의 블랙홀 H는 견디기 쉬운 곳이다.

계시록의 다음 구절을 보라,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요한계시록 20장11절)"




성경의 엔딩은 하나님께서 마침내는 인간에게 거는 모든 희망의 밧줄을 끊어버리는 것으로 마감하고 있다.

오늘 날 S교단이 그토록 흠모하는 <천년왕국>이 사라진다.

저기 위 구절을 보라!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하나님께서 지구를 없애버리신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은 더 이상 인간에게 그 어떤 모험이나 희망도 걸지 않는다,

사탄 때문에 우리가 타락했다는 인간들의 핑계가 참인지 거짓인지를 증명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사탄을 천년 동안 옥에 가두신다.

하지만 천년 왕국 뒤에 여전히 인간은 사탄을 선택해서 곡과 마곡의 전쟁을 일으킨다.

이때는 하나님께서 직접 지구를 심판하신다.

하나님의 심판은 지구를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인류가 더 이상 종족을 번식하는 것을 중단시켜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우주 어딘가에 숨죽이고 있던 G의 공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참혹함 앞에서 온 우주가 전율을 일으킨다,

성경은 그것을 <둘째 사망> 혹 <불못>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구원없이 죽어간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다.

그리고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모든 이들은 비로소 불못으로 들어간다.

이 모든 기승전결을 아는 조나단 유가 전하지 않음으로 받을 죄가는 더욱 더 클 것이다.




4.하나님은 선한 분이신가?




자, 이제 조만간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이 지구상에서 한 날 한 시에 모두 사라진다.

당신이 믿든 안믿든 모두 사라진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이 사실을 가르치지 않는 오늘 날 교회의 목사와 지도자들이

가장 혹독하게 꾸중을 들을 것이라고 믿는다.

오늘 날 목사들을 눈 멀고 게으르게 만든 것은 교회의 성도들이다.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의 성도들의 가장 큰 특징은

미지근하다는 것이다.

절대로 성경을 공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교회를 떠나는 것도 아니다,

뜻뜻 미지근하게 그저 이렇게 열심히 다니다보면 구원 받겠지 하고

다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교회 목사가 열심을 내어 성경을 공부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떡하면 성전건축이나 성도 한 명 더 모으게 채찍질을 한다.


그런 당신에게 성경에 등장하는 한 여자를 소개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 아래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이는 자기에게 열 두살 먹은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

예수께서 가실 때에 무리가 옹위하더라

이에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옷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누가복음 8장 41~44절-




조나단 유는 어느 날 누가복음 8장 말씀을 읽다가 울었던 기억이 있다.

주일학교 시절부터 무수히 읽어오던 저 말씀이

어느 날 망연히 응시하는데

순간 눈에 눈물이 고였다.

눈물이 없는 냉혈한이라고 스스로 자처하던  때에 흘렀던 눈물이라

더욱 더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혈루증에 시달리는 여인의 벼랑 끝에 내어 몰린

고독이 내 온 몸에 동질감으로 엄습해 왔기 때문이었을까?

저 의의 말씀의 촛점은 야이로 회당장의 믿음에 맞추어져 있었지만

나는 회당장을 따라가는 예수님과,

그 예수님을 둘러싼 수많은 군중들,

그 사이에서 개미 새끼처럼 파고들던 한 병든 여인의 모습을 보았다.

의학 백과사전에서는 '혈루증,血漏症,flow of blood'을
  
증식성 자궁내막염으로 인한 만성 자궁 출혈로 정의내리고 있다.

하지만, 정작 여인을 괴롭혔던 것은 혈루증 자체가 아니었을 것이다.



"여인의 피의 유출이 그 불결기 외에 있어서 여러 날이 간다든지

그 유출이 불결기를 지나든지 하면

그 부정을 유출하는 날 동안은 무릇 그 불결한 때와 같이 부정한즉
  
무릇 그 유출이 있는 날 동안에 그의 눕는 침상은

그에게 불결한 때의 침상과 같고

무릇 그의 앉는 자리도 부정함이 불결의 부정과 같으니

이런 것을 만지는 자는 무릇 부정한즉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요

그의 유출이 그치면 칠일을 센 후에야 정하리니

그는 제 팔일에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자기를 위하여 취하여

회막문 앞 제사장에게로 가져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하나는 속죄제로,

하나는 번제로 드려 유출로 부정한 여인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할찌니라(레위기 15장 25)"  



구약의 구원은 숨막히게 복잡했다.

여인의 유출증은 모세의 율법에 의해 '부정한 것'으로 낙인 찍혔고,

그녀는 12년간 피가 보일 때마다 무엇이든 빨아야 했고,

비둘기 두 마리를 사서 제자상에게로 향해야 했다.

그럴 때마다 당시 모든 법을 판결하고 속제하던 율법의 우두머리였던 제사상은  

여인의 머리에 우슬초를 뿌리며

"부정하다, 부정하다"

외쳤을 것이다.

여인에게 '피'는 부정이였고, 공포였고,

가장 낮은 자존감의 뿌리 즈음에 위치한 원수였을 것이다.

여인은 제사상으로부터

"네가 앉고 누운 자리를 만진 사람도 부정해질 것이니,

네 근처에 누구든지 오게 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너 역시 어느 누구도 만져(터치해)서는 안된다"

는 경고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것이다.

그녀에게 '피'와 '터치'는 가슴을 쥐어매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터치' 할 수도 없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녀와 그녀의 주변부를 '터치'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토록 오랜 방치와 절망의 고독 끝에서

비로소 해법 하나를 알게 된다,

자신의 불치의 병, 저 심연의 근원 아래에는

바로  '터치'가 미소 짓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예수님을 '터치' 하기로 결심한다.

이웃 사람도, 자식도, 남편도 터치 해서는 안된다는 교육을 받아온 그녀가

비로소 예수님을 '터치'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을 터치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유토피아의 세계가 회복되면 각자 한 자리씩 하겠다고 마음 먹은

예수님의 12 제자들이 수시로 예수님을 지키고 있었고,

당시 예수님의 주변에는 예수님께 도전하기 위해 온

율법사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늘 운집해 있었다.

여인은 기회를 노려야 했을 것이다.

가능한 시끄럽고, 정신이 없는 복잡한 순간,

어느 누구도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눈치 채지 못하게

바람처럼 접근할 수 있는 그런 혼란의 순간을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마침내 기회가 왔다.

회당장의 12 살 난 딸이 죽어간다는 소식을 들었고,

마침내 콧대 높고, 당대 최고의 권력가 회당장이

예수님께 매달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여인에게는 철호의 찬스였다,

아니나 다를까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으로 향했고

예수님의 뒤는 이 일이 어떻게 완결될지 보기 위해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로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여인에게는 다시 오지 않을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여인의 심장은 시속 수백 킬로를 달리는 증기 기관차 처럼 요동치기 시작한다.

여인은 사람들을 헤집고 나아간다.

예수님의 저 옷자락...

바람과 먼지에 팔락이는 저 옷자락 끝에만 손을 대면

예수님도 깜쪽같이 눈치 못 채리라...

제사장도, 마을 사람들도, 예수님의 제자들도 속일 수 있는 완전 범죄를 하는 거야...

힘을 내야 해...

여인의 눈꺼풀은 가을 들녘의 풀잠자리의 꽁지처럼 파르르 떨리고

호흡은 한없이 가빠온다.

그리고 마침내 여인은 예수님의 옷끝에 손을 댄다.

터치!

"성공이야!"

동시에 성경은 여인의 혈루증이 나아버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인은 미친 듯이 흥분했다.

"나의 비굴하고 가장 낮은 신앙이 내 혈루증을 고친 거야"

그 순간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신다.

여인의 기쁨은 잠시, 여인의 가슴이 쿵하고 내려 앉는다.

예수님께서 돌아서신다.

그리고 천형처럼 무거운 입을 여신다.

"누구냐, 내 옷에 손을 댄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은 너무도 단호하고 엄중하셔서

여인은 비틀거리며 쓰러질 수 밖에 없었다.

" 다 틀렸어...

나의 계획은 들통나고 말았어..."

여인은 무릎으로 주님께 나아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여인은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여인은 지금까지 자신에게 있었던 사건을 낱낱이 고백한다.

그때 예수님은 참으로 놀라운 은혜의 말씀을 하신다.

"여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내가 너를 구원하였다도 아니고,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아니고,

바로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조나단 유는 글을 맺는다.

오늘 날 당신을 돌아보라,

당신에게는 저 혈류증 걸린 여자처럼 간절하게 당신의 <지성소>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들여다볼 겸손함이 있는가?

당신은 노아의 방주에 올라타지 못한 인류 99.9%의 사람들처럼

또 기회가 오겠지 하고...

쓸쓸히 페이지를 닫아버리는 미련함이 훨씬 더 많지는 않은가?

그런 당신에게 묻는다.

그토록 많은 기회를 주신 하나님에게

당신은 여전히 말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나님은 당신은 선한 분이신가?"


그간 긴 글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기간/2020년 4월 4일 매주 토요일 오후 6시~ 10주간(중간에 불참하실 분 절대 신청하지 말 것!;우한 코로나와 관계없이 수강신청이 일정 충족되어졌기에 그대로 진행합니다)

장소/DRFA 동검도 365예술극장

신청/카카오 아이디 drfacokr로 문의 또는 아래 링크를 클릭 후 회원가입 후 댓글란에 계시록 강의를 듣어야히는 이유를 적고 수강신청을 해주세요.

자격/반드시 요한계시록을 10번 이상 읽으신 분! 동시에 아래 바로가기를 클릭해서 강의 서머리를 적어도 2번 이상 숙독하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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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FA,JONATHAN]
























 유감독



delete 2020/05/09
"오늘 마침내 계시록 강의 마지막 날...

지난 6주 간 내 모든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그토록 정열적으로 강의해본 적이 얼마만인지...

종강연을 축하하며 수강생 몇 분이 소중한 선물을 준비해 오셨네요.

수강생 여러분, 너무나 행복했던 시간이었고

우리 모두 휴거의 우주선에서 만나

영원한 새예루살렘 성으로 같이 가요.

감사했습니다"


JONATHAN






 

LIST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서문,a prolog(ue)

"조나단 유가 클라렌스 라킨을 만났을 때"
+6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1 회
천국 혹은 새 예루살렘성(城)
(요한계시록 21~22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2 회
적 그리스도
(요한계시록 13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3 회
휴거 그리고 제 7의 봉인
(요한계시록 5~6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4 회
"13개의 대재앙"
(요한계시록 6~16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5 회
"14만 4천명의 의인"
(요한계시록 7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6 회
"다시 온 모세와 엘리야"
(요한계시록 11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7 회
"아, 바벨론!"
(요한계시록 17~18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8 회
"재림, 그리고 아마겟돈 전쟁"
(요한계시록 19장)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9 회
"교회의 실패"
(요한계시록 1~3장)
+1
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

제 10 회(완결)
"하나님은 선한 분이신가?"
(요한계시록 4장)
+1
[부록]조나단 유의 요한계시록 강의;다니엘의 70주
Jonathan Yu’s The Book of Revelation;Daniel's 70 WEEK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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